도망쳐도 괜찮아, 결국 내 앞이니까 | 집착광공 playlist
애용이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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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도 괜찮아, 결국 내 앞이니까 | 집착광공 playlist
670 просмотров · 2 месяца назад
애용이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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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찾지 않는 동안, 나는 꽤 멀리 왔다고 믿었다.
연락처를 바꾸고, 아는 얼굴이 없는 도시로 옮겼다. 이전에 쓰던 이름은 버리지 못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오래 불러주지 않았으므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름은 불릴 때만 사람의 것이고, 불리지 않는 동안에는 서랍 속 열쇠처럼 아무 데에도 맞지 않는 물건이 된다.
몇 달 동안 연락은 없었다.
처음에는 낯선 번호가 뜰 때마다 손끝이 식었다. 현관 앞에 인기척이 머물면 숨을 죽였고, 퇴근길 유리창에 비친 남자의 어깨를 몇 번이나 잘못 알아봤다. 그러다 그런 일도 줄었다. 공포도 오래 쓰면 마모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가 나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 생각은 안도보다 모욕에 가까웠다.
나는 떠나기 위해 수많은 것을 버렸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잊었다. 그렇다면 내가 감당한 불안과 결심은 전부 혼자 꾸민 소동에 불과했다. 도망친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추격이 아니라, 뒤에서 아무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를 다시 본 건 비가 내리던 저녁이었다.
약속 장소를 잘못 찾아 들어간 건물의 일층. 나는 젖은 우산을 접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누군가 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구두 끝이 시야에 들어왔다.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검은 가죽 위로 형광등이 얇게 미끄러졌다.
고개를 들기 전부터 알았다.
몸은 기억보다 정직했다. 심장은 뛰지 않고 잠시 멈췄다. 도망치라고 보내야 할 신호가 어딘가에서 막힌 듯했다.
그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점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우스웠다. 그 사람은 변하지 않는 쪽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하는 인간이었다.
“잘 지냈어?”
목소리도 같았다.
나는 대답 대신 우산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젖은 물이 손바닥을 타고 흘렀다.
그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번호를 왜 바꿨는지, 누구와 지냈는지, 돌아올 생각은 있었는지. 질문이 없다는 건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답을 가진 사람의 태도일 수도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
“많이 갔네.”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난도 아니었다. 어항 속 물고기가 유리벽을 따라 얼마나 멀리 헤엄쳤는지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출입문 쪽을 봤다. 밖에는 비가 내렸고, 사람들이 우산을 쓴 채 끊임없이 지나갔다. 저들 사이로 들어가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몇 초 동안은.
그는 길을 막지 않았다.
손을 뻗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한쪽으로 비켜섰다.
“가.”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기색이 지나갔다. 웃음이라기에는 차갑고, 실망이라기에는 익숙한 표정이었다.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의 얼굴.
그제야 알았다.
내가 멀리 왔다고 믿은 건 거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발밑의 그림자가 사라진 줄 알고 한참을 걷다가, 조명이 바뀌는 순간 다시 발목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가 몸을 돌렸다.
따라오라는 말은 없었다. 명령은 대개 불확실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몇 걸음 뒤, 그가 고개만 돌렸다.
“더 가도 돼.”
빗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낮게 스며들었다.
“결국 내 앞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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