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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조선 과거시험은 없었다, 시험장이 사람 죽는 난장판으로 변한 이유

궁금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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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조선 과거시험은 없었다, 시험장이 사람 죽는 난장판으로 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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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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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유생들이 시험장 안에서 밟혀 숨지고 세 곳 시험장에만 11만 명이 넘게 몰려들던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이 왜 그런 난장판이 되었는지를 따라갑니다. 1699년 치러진 한 과거시험의 하루를 전날 밤 자리싸움부터 새벽 문 앞의 혼란, 한낮의 대리 답안 작성, 그리고 밤사이 채점실 자물쇠를 따고 이름 봉투를 바꿔치기하던 뒷거래까지 시간순으로 함께 봅니다. 마지막에는 이 사건이 남긴 씁쓸한 결말이 남아 있습니다. 이름 봉투를 바꿔치기한 일만 13건이 드러나 합격자 34명의 합격이 모두 취소되었는데도, 아전 민시준이 웃으며 했다는 "이런 일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는 말처럼 그 거래는 1894년 과거가 폐지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 본 영상은 특정 국가·인물·단체를 비방할 의도가 없으며, 사료와 연구 성과에 근거한 역사 정보 제공 목적입니다. #과거시험 #조선과거제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 #영조 #숙종 #정조 #성균관 #양반 #유생 #한국사 #조선생활사 #역사이야기 #궁금냥이 참고 자료 『영조실록』 영조 49년(1773) 10월 20일·22일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숙종 12년(1686) 4월 4일·5일 기사 『숙종실록』 숙종 25년(1699) 12월 30일 ~ 26년(1700) 7월 28일 기사(기묘년 과거 부정 사건 관련) 『정조실록』 정조 15년(1791) 8월 9일 기사 『정조실록』 정조 24년(1800) 3월 21일·22일 기사 『고종실록』 고종 16년(1879) 1월 6일 기사 『광해군일기』 광해군 8년(1616) 11월 27일 기사 『영조실록』 권121·『정조실록』 권53, 1932년 간행본(위키미디어 공용) 김정호, 「수선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함흥에서의 과거시험」(북관유적도첩), 심상기의 과거 답안지, 「모당 홍이상공의 일생」(평생도) — 공공누리 제1유형 국가유산청,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사진 — 공공누리 제1유형 국립고궁박물관, 영조 어진 ※ 1773년 시험장 사고의 사망자 수(10월 22일 실록 기사 2명과 10월 20일 사간 곽진순 상소의 '근 10명'), 1686년 사고의 사망자 수(실록에는 인원수 기록 없음, 성균관 쪽 기록 8명)처럼 사료 간에 어긋나는 대목은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그대로 밝혔습니다. 면책 고지 ① 본 영상은 특정 국가·인물·단체에 대한 비방이나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② 사료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역사 교육·정보 제공 목적의 콘텐츠입니다. ③ 인용한 기록의 해석은 연구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확정되지 않은 사안은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④ 본 채널은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