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내쫓으라#창21:8-13#김천부상교회#20261025
예수산소망(황병철)
0:00 / 0:00
#307.#내쫓으라#창21:8-13#김천부상교회#20261025
7 просмотров · 7 дн. назад
예수산소망(황병철)
315 подписчиков
7 просмотров · 7 дн. назад
내쫓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 때문이며, 어떻게 순종할 수 있는가?
이스마엘의 조롱을 본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10절)"고 요구하고,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12절)"고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이었다.
왜냐 무려 14년 이상 자기 아들로 사랑하고 키워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자기 가문과 언약을 이어갈 유일한 존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이스마엘과 같은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에 대해 미련을 버리고
언약의 실체 이삭만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가장 쓰라린 애착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었다.
그래서 믿음의 순종과 십자가는 우리가 사랑하던 것,
내 살점과도 같은 옛 사람의 습성, 나의 능력을 의지했던 육신의 결과물들을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죽을 듯한 아픔 안에서 '끊어내는' 형틀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내버려 두지 않고 과감하게 내쫓는 단호한 행동인 것이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결코 기업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육체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라고 하시는 성령님은
공존 불가한 것이고, 완전히 이질적이 것이며, 서로를 대적하는 것이다.
한 지붕 아래 둔 채 적당히 화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내쫓는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영적 투쟁의 도화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의 이스마엘, 나의 힘, 나의 공로, 육신의 습성이
새 생명을 조롱하고 방해하고 있음을 처절히 깨닫고,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던 '자기'를 날마다 철저히 부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스마엘이 우리 삶의 일부처럼 친숙하고 정이 들었을지라도,
살점 떨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그 무가치함과 헛됨을 절감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내어쫓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육신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부인하고 내어 쫓음(십자가)으로써
이삭, 약속의 생명이 온전한 후사로 굳게 선 것처럼,
성도 역시 매일 믿음의 순종으로 십자가에서 자기를 부인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삶을 온전히 통치하시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서 적당히 화해시키는 중간지대, 회색지대는 허락되지 않았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옛 사람은 반드시 쫓아내어 영적 사망 선고를 내려야만 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 세상이 칭찬하는 나의 공로, 그리고 지독하게 안고 가고 싶은
'나의 이스마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광야로 내몰아 '단절'시키는 사형틀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인간적인 모든 정과 이해관계를
칼로 단호하게 끊어내는 고통의 형틀을 짊어지라는 것이다.
인간적인 동정심이나 상식으로는 이스마엘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의 눈물을 삼키며 순종의 칼을 들어 올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토록 냉정할 정도로 이스마엘을 내치라 하셨는가?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 언약의 후손이라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해석(갈 4:22-31)처럼, 인간적인 노력(육체)으로 맺어진
이스마엘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출중해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로 탄생한 새 생명(이삭)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피 흘리기까지 옛 사람, 이스마엘과 싸우며 십자가를 져야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안의 '진짜 예수님의 생명, 이삭'이
온전히 통치하게 되거나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 언약이 만발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랑, 나의 방법, 나의 육적인 자아가 내쫓기는(죽는) 그 빈 자리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은혜, 참된 언약의 씨만이 영광을 받으시며 역사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