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풀] 이순신의 승리는 200년 전 시작됐다! 화포를 향한 고려의 분투 |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_역사를 바꾼 과학기술 2부 "화포를 쏘다" (KBS_2026.10.25 방송)
KBS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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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풀] 이순신의 승리는 200년 전 시작됐다! 화포를 향한 고려의 분투 |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_역사를 바꾼 과학기술 2부 "화포를 쏘다" (KBS_2026.10.25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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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그램은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저소득·소외계층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
#역사스페셜 #시간여행자 #지승현 #화포 #진포해전 #공민왕 #최무선
1380년 8월, 금강 하구 진포 앞바다를 왜선 500척이 포구를 가득 메웠다. 사상 최대 규모의 왜구가 몰려온 그날, 고려 함대에서 낯선 굉음이 울렸다. 연기와 불길이 하늘을 뒤덮었고 왜선은 차례로 불타올랐다.
수십 년 동안 왜구에 시달리던 고려는 어떻게 바다 위에서 적을 궤멸시킬 수 있었을까. 유럽 함대가 배 위에 화포를 얹고 오스만 제국을 꺾은 레판토 해전(1571)보다 약 200년 앞선 일이다.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42회 '화포를 쏘다' 편에서는 사료와 유물, 과학 실험을 바탕으로 화약 국산화부터 전함 개발, 진포해전의 승리까지 고려가 바다 위에 해전의 새로운 공식을 세운 과정을 추적한다.
■ 매달 두 번꼴로 쳐들어온 왜구, 무너지는 고려
1350년 이후 왜구의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우왕 재위 14년 동안 『고려사』에 남은 기록만 400회에 가깝다. 이들이 노린 곳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아두는 조창이었다. 진포 인근의 진성창은 호남평야의 쌀이 개경으로 올라가던 길목이었다. 백성의 삶은 물론 나라의 조세와 물류까지 흔들리자 고려는 해안 주민에게 대피령까지 내렸다. 일단 상륙을 허용하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왜구가 배에서 내리기 전에 바다 위에서 끝내야 했다.
■ 최무선보다 먼저 화약을 꿈꾼 왕, 공민왕
화약 무기 하면 흔히 최무선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화약의 힘에 주목한 사람이 있다.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회복하려 했던 개혁 군주 공민왕이다. 고려는 일찍이 삼별초의 진도 항전 때 원군이 화약 무기를 동원하는 모습을 지켜본 바 있다. 먼 거리에서 성벽을 무너뜨리는 그 위력은 두려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공민왕은 화약 무기와 전함을 함께 준비했다. 그러나 이듬해 공민왕이 시해되면서 자주국방의 꿈은 멈춰 선다. 잊혀 있던 공민왕의 구상을 기록으로 다시 짚어본다.
■ "재료는 누구나 안다, 만드는 법이 기밀이다"… 고려의 전략
화약의 기본 재료는 염초와 숯, 유황 세 가지이다. 문제는 배합 비율과 가공법, 특히 불길에 산소를 공급하는 염초의 순도였다. 북송은 1044년 『무경총요』에 제조법을 정리할 만큼 화약을 국가가 관리했고, 원과 명 역시 그 비법을 철저히 감췄다. 제작진은 화약 무기의 발원지인 중국 카이펑을 찾아 송나라의 화약 기술이 남긴 흔적을 살폈다. 첨단기술을 빠르게 손에 넣어 내 것으로 만드는 고려의 전략을 분석한다.
■ 화포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 포를 얹을 배
포를 쏘려면 그 반동을 견딜 배가 있어야 한다. 고려의 조선 기술은 원나라도 탐낸 수준이었다. 고려 배는 왜 튼튼했을까.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고려 배의 재료인 소나무와 당시 중국·일본이 주로 쓴 삼나무의 휨·충격 실험을 진행했다. 소나무는 휘어지며 버텼고, 삼나무는 단번에 쪼개져 튕겨 나갔다. 화약 무기와 튼튼한 전함, 두 개의 카드가 맞물리는 과정을 살펴본다.
■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공학자, 최무선
공민왕 사후 최무선은 화약 무기 전담 기구인 화통도감에서 그 뜻을 이어간다. 연구와 개발, 생산을 한곳에서 맡은 이곳에서 여러 화기가 만들어졌다. 최근 그 시절 흔적일지 모르는 유물 '황자화통'이 발견됐다. 화통도감 초창기에 만든 고려의 화기일 가능성도 짚어본다.
1380년 진포해전에서 최무선은 부원수로 출전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전함 건조를 직접 감독했다는 내용이 있다. 화약을 국산화하고, 화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실을 배까지 만든 뒤 스스로 첫 실전에 나선 것이다.
■ K-화력수군의 시작, 진포에서 노량까지
진포의 승리 이후 고려는 관음포 해전과 대마도 정벌로 기세를 이어갔고, 조선은 바다에서 적을 먼저 요격하는 상시 수군을 갖추게 된다. 그 기술은 200여 년 뒤 임진왜란에서 꽃을 피웠다.
화포도, 배도 우리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는 당대 최첨단 기술을 빠르게 손에 넣고, 우리 바다에 맞게 고쳐 쓰고, 둘을 하나로 묶어 전에 없던 전술을 만들어냈다.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오늘, 600여 년 전 진포의 포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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