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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 - 태극기의 변천사와 함께 부르는

빛으로 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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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 - 태극기의 변천사와 함께 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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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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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임시정부 애국가 1.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 현재 애국가의 전신으로 추적되는 최초의 노래는 독립문 건립 당시 정초식에서 불린 ‘무궁화 노래’입니다. 그 가사의 후렴 부분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현재 애국가 후렴과 같습니다. 가사는 윤치호가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노래 곡조는 영국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자인(Auld Lang Syne)이었습니다.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벙커(D.A.Bunker) 선교사가 그 선율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1운동 이전까지 민중들 사이에서는 여러 애국의 노래들이 불려졌는데, 민족적 거사를 위하여 통일된 노래가 필요하였고, 그것이 바로 올드 랭 자인의 선율에 따른 애국가였던 것입니다. 올드 랭 자인 선율의 애국가는 세계 각지의 동포들에게 전파되었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이 애국가는 공식 대한민국의 국가로 연주되었습니다. 2. 태극기의 역사 현재의 태극기가 확정되기까지 여러 종류의 태극기가 있었습니다. 1) 박영효 태극기 (1882) 고종의 특사 박영효는 1882년 9월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려고 일본으로 가는 군함 안에서 조선의 공식적인 국기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자신이 직접 고안한 태극기 시안을 사용하였습니다. 1882년 10월 3일 박영효는 도안을 고종에게 보고하였고, 고종은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제정.선포하였습니다. 2) 데니 태극기 (1890) 1886~1890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오언 N.데니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뒤 1890년 5월 청의 입김으로 파면돼 고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갔던 태극기 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추정됩니다. 3) 불원복 태극기 (1907) 조선 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이 국권 수복을 기원하며 불원복(不遠復/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4) 안중근 단지동맹 태극기 (1909) 1909년 3월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하산(크라스키노)에서 안중근은 김기룡, 강순기 등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였습니다. 동지들은 각자 왼손 약지를 잘라 혈서로 건곤감리 대신 대한독립을 쓴 태극기입니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한일병탄을 저지할 것을 맹세(이 결의는 2~~3년 내에 국권 회복을 이루지 못하면 자결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음)하였습니다. 태극음양 문양이 현재 태극기와 반대인 것이 특징입니다. 5) 독립운동가 남상락 자수 태극기(1919.4.4.)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1919년 4월 4일 충남 당진에서 펼쳐진 4.4 독립만세운동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인 구홍원 여사와 함께 만든 것입니다.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이고, 태극기의 4괘 중 감과 리의 위치가 현재와 다릅니다. 6) 진관사태극기(1919) 2009년 5월 26일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쌓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로 추정됩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의지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7) 임시정부 의정원 태극기(1923) 상하이에서 1919년 4월 10일 첫 회의를 연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국가체제를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주공화제’로 정했습니다. 이 내용과 기본권 조항들을 담아 선포한 것이 우리 역사상 최초의 헌법 ‘대한민국 임시헌장’이고, 이를 토대로 다음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기 제14대.제18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붕준의 부인 노영재가 손바느질로 제작,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8) 김구 서명문 태극기(1941) 김구 주석이 1941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샤를 메우스) 신부에게 준 태극기입니다. 바탕에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 친필 묵서가 쓰여졌습니다.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독립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태극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강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9)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1945) 한국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일명 문수열)이 동료 이정수로부터 1945년에 선물 받은 태극기에 문웅명 대원이 다른 부대로 이동하게 되자 1945년 1월에 70여명의 동료들이 이별의 아쉬움과 조국 독립의 여명을 담아 빼곡하게 서명과 글귀를 남겼습니다. 10) 현재의 태극기 (1949.10.5.) 대한민국 정부는 국기 제작에 대한 국기 시정 규정을 제정하여 태극기의 모양과 규격을 통일했습니다. 1984년 비율 3:2 등 일부 치수를 명시하였고, 1997년에 대통령령으로 색상.도형 정밀표준을 제정하였고, 2007년 7월 국기법을 제정하여 1997년 규격을 법률로 승격하였고, 2011년 디지털.인쇄 색 좌표 재조정, 현재 규격을 확립하였습니다. 비율 - 3:2 sRGB - 빨강(205,49,58), 파랑(0,71,160), 검정(14,14,14), 하양(241,241,241) Munsell - 빨강(6.0R 4.5/14), 파랑(5.0PB 3.0/12), 검은색(N 0.5), 하양(N,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