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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국경선은 왜 조선이 빠진 자리에서 그어졌을까

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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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국경선은 왜 조선이 빠진 자리에서 그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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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백두산 비석부터 1962년 조약까지, 간도 위에 국경선이 그어진 세 번의 순간 비석의 두 글자 '토문'을 두고 조선과 청은 왜 끝내 선을 긋지 못했을까 #간도 #백두산정계비 #간도협약 0:00 대한제국이 관리를 둔 땅 1:22 1712년, 백두산의 비석 4:20 토문과 두만, 같은 두 글자 다른 강 6:21 두 번의 감계회담 9:01 대한제국의 관리 11:24 1909년 간도협약 14:21 해방 뒤 다시 그은 선 16:53 오늘의 연변, 세 번의 선 참고 『숙종실록』 숙종 36~38년(1710~1712) 백두산 정계 관련 기사 『고종실록』 고종 40년(1903) 8월 11일 북간도 관리 기사 이중하_『감계사등록』 (1885·1887) 圖們江中韓界務條款(간도협약)·東三省交涉五案條款 (1909) 中华人民共和国和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边界条约 (196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백두산정계비」·「간도」·「간도협약」·「조중변계조약」 국회회의록_제17대 국정감사 통일외교통상위원회(2004.10.22)·제21대 제413회 본회의(202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