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ейти к содержимому

송담스님(No 058) 77년 동지차례 법회

용화선원: 송담스님

0:00 / 0:00

송담스님(No 058) 77년 동지차례 법회

1 368 просмотров · 5 лет назад
용화선원: 송담스님
13,1 тыс. подписчиков
1 368 просмотров · 5 лет назад
**송담스님(No 058) 1977년 동지차례 법회 Timestamp 00:00 용화선원 01:51 오늘은 동지. 우주의 변화를 보고 또 새로운 각오를 해야. 09:44 참선도, 깨달음도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한다. 12:22 견성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하는 것' 17:18 활구참선이 무엇이냐? 23:01 깨닫기 전에도,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야. 25:47 너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보지를 못하는 것. 마치 물속에 떠억 앉아서 물을 찾는 거와 같은 것. 화두(공안)은 깨달음에 이르는 좋은 열쇠요, 나침반. 무슨 소견이 났을 때 공안은 바로 그 사람의 깨달음 여부를 알아보는 좋은 시험 문제. 28:12 공부가 안될 때, 그때가 한 계단 공부가 올라서려는 고비. 31:09 참선 공부 열심히 함으로써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 있다. [법문 내용] 참선도 그렇고, 또한 깨달음도 그렇고,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 / 견성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의 부처를 친견하는 것' / 내가 나를 깨닫는 것—언제나 나의 부처, 나의 성품, 나의 마음자리는 이 몸으로부터 조금도 떠나 있지를 않다 / 이것은 오직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만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활구참선은 이론을 통해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라,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이뭣고?」 / 공안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깨닫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물쇠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전강 조실 스님 말씀에 "깨닫기 전에도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의 지도하에 화두를 타서 정진을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서 깨달은 뒤에 수행하는 지도를 또 받아야 한다"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은 것은 스승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언제나 나와 같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벌써 찾으면 그르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〇 우리 부처님을 믿는 제자는 해가 낮이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이러한 우주 일월성신의 기상 변화, 이러한 것을 보고서도 항시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의 살아나갈 희망과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고 하는 것을 이러한 기회에 각오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법(正法)을 믿고 열심히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參禪)을 하는 것만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올바르게 그리고 희망과 행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〇 참선은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상화(平常話), 일상 생활—밥 먹고, 옷 입고, 똥 누고, 일하고, 소지하고, 걸어 다니고—하는 그 생활을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참선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도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생각으로 성내고 웃고 울고 하는 그 일상,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그렇고 또한 참선도 그렇습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일체 행동 동작을 떠나서 깨달음이 있다면은 그것을 떠나서 찾아야 되겠지마는, 중생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뚱이와 생각, 그놈을 일찰나(一刹那)도 떠나지 아니하고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〇 내가 나를 깨닫는 것—언제나 나의 부처, 나의 성품, 나의 마음자리는 이 몸으로부터 조금도 떠나 있지를 않습니다.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입으로 말하고 음식을 먹을 때, 발로 걸어 다닐 때, 울고 웃고 성낼 때 바로 그곳에 '나'가 있건만, 어째서 내가 나를 보지를 못해? 이것은 이론적으로 아무리 설명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설명을 들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만이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〇 활구참선이 무엇이냐?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가 그동안에 책을 보거나 법문을 듣거나 해서 알고 있는 불교의 모든 지식, 상식, 교리 그러한 것을 고대로 놔버리고 다못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 「이 무엇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각기 선지식으로부터 받은 그 화두가 같은 분도 있고 다른 분도 계시겠지마는, 다른 분이야 무슨 화두를 받았건 말았건 자기가 받은 그 화두 그것을 이론을 통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저 바보처럼, 하라고 하는 대로만 하는 사람은 길이 빠른 것이고, 영리하고 똑똑해서 자꾸 이리저리 그것을 사량복탁(思量卜度), 중생심으로 이리저리 따지고 파고들고 비교하고 이러는 동안에 점점 시간만 굴러가고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나쁜 버릇만 자꾸 생겨 가지고 길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〇 전강 조실 스님 말씀에 "깨닫기 전에도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의 지도하에 화두를 타서 정진을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서 깨달은 뒤에 수행하는 지도를 또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〇 땅속에서 땅을 파 가지고 금을 찾는다든지, 바닷속을 뒤져 가지고 보석을 찾는다든지 하는 것은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혹 눈에 띄기도 하겠지마는,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은 것은 스승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언제나 나와 같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벌써 찾으면 그르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것은 화두를 항시 의심을 해서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지마는, 정말 바로 말하자면 찾음으로 해서 자기를 잃게 되는 소치인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찾되 선지식의 지도에 의해서 찾아야만, 찾음으로써 잃어버리는 그것을 보게 되는 까닭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물속에 떠억 앉아서 물을 찾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물속에 풍덩 주저앉아 가지고 목이 마르다고 물을 찾는 거와 같은 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 공안은 문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요, 천칠백 화두라 합니다마는 그 공안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좋은 열쇠요, 나침반입니다. 그러나 무슨 소견이 났을 때에는 그 공안은 바로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사람이냐?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냐?'를 시험해 보기 위한 좋은 시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랐다'할 때에 그 사람에게 공안을 하나 턱 물어보면은 그 공안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떠한 표정을 짓느냐? 입 벌리기 전에 벌써 '저 사람은 바로 본 사람이다. 바로 못 본 사람이다. 바로 깨달은 사람이다.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하는 것을 입 벌리기 전에 선지식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마는 짐짓 입을 벌리게 해 보는 것입니다. 입을 벌려 봤자, 입 벌리기 전에 알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물속에—묻는 사람도 물속에 떠억 앉았고, 깨달랐다고 온 사람도 물속에 같이 들어앉아서 "어떤 것이 물이냐? 물이 어디가 있느냐?"하고 물어본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물속에 들어앉은 줄을 모르고 물을 찾기 위해서 위로 아래로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벌써 그 사람 '아! 이 사람이 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구나' 대번에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일체 공안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벌써 찾으면 저 죽는 것이고, 찾으면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공안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깨닫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물쇠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하는 것을 깊이 인식을 하시고, 화두를 공부하다가 조금 잘 들리지 아니하고, 의심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화두가 나빠서 그런가 보다'해 가지고 이 화두, 저 화두 이렇게 화두를 바꿀려고 쌌거나 그래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〇 '오늘 불공 동참(同參)을 했으니까 앞으로 이 일이 잘 성취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이미 참석하려고 하는 마음을 냈을 때, 또 이 자리에 앉았을 때 성취했다'고 생각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다 성취했다'고 생각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취하기를 바라지 말고, '이미 했다'고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성공할, 성취되는 잘되는 것입니다. '이랬으니까 장차 되리라' 되기를 바라는 동안에는 '혹 안 될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거기에 붙어 있기 때문에 '될까 말까? 될까 말까?' 외나무다리를 건너갈 때 '떨어지면 어쩔꼬? 떨어지면 어쩔꼬?' 그러다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 있게 쑤욱 걸어가면은 무난히 건너갈 것도, 가다가 중간쯤 가다가 '떨어지면 어쩔꼬? 떨어지면 어쩔고?'하면서 계곡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은 영락없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믿어야 한다'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용화선원 Youtube 채널 구독 : https://goo.gl/aAP5ge 용화선원: http://www.yonghwasunwon.or.kr 광주(분당) 용화선원: http://cafe.daum.net/7094 팟캐스트: https://itunes.apple.com/kr/podcast/i... 팟빵: http://www.podbbang.com/ch/548 법문 블로그 송담 전강 게송집 http://yongwhasunwon.tistory.com 용화선원 법문듣기(주제별) http://emokko.tistory.com/category 참선법문(통법문) http://chamsonbub.tistory.com 참선사전(ㄱㄴㄷ순) http://chamsonsajeon.tistory.com #송담스님 #용화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