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땅을 빼앗은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들어간 의열단원 | 1926년 12월 28일 을지로의 10분
이름 없는 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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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 땅을 빼앗은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들어간 의열단원 | 1926년 12월 28일 을지로의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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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2월 28일 오후 2시 5분, 서울 한복판 조선식산은행에 한 남자가 폭탄을 던졌습니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10분 뒤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경성지점으로 들어가 총을 쏘고 다시 폭탄을 던졌지만, 이번에도 불발이었습니다. 의열단원 나석주의 이야기입니다. 올해 12월 28일이면 이 의거로부터 꼭 100년이 됩니다.
동척은 1908년에 세워져 조선의 땅을 사들인 회사입니다. 가진 땅은 1913년 4만 정보에서 1917년 7만 5천 정보, 1942년 20만 정보로 불었고, 소작농은 수확의 절반을 바쳐야 했습니다. 1926년까지 일본인 이민 9,096호가 그 땅에 들어왔습니다.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 산업 정책과 산미증식계획에 돈을 대던 은행이었습니다. 의열단이 처음부터 정한 '부술 곳 다섯' 가운데 두 번째가 바로 동양척식회사였습니다.
나석주는 황해도 재령 북률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향 땅의 상당 부분이 동척 소유였고, 아버지도 동척 농장의 소작인이었습니다. 안악 양산학교에서 스승 김구를 만났고, 만주 무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1919년 만세 시위를 이끌다 붙잡혔고, 그 뒤 동지들과 독립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냈습니다. 1920년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 중국 군관학교, 중국군 장교를 거쳐 김원봉의 의열단에 들어갔습니다.
1926년 김창숙이 국내로 결사대를 보내자고 하자 김구가 그를 추천했고, 김창숙은 식산은행과 동척을 부수는 일이 가장 급하다고 했습니다. 12월 26일 그는 중국인 노동자 '마중덕'으로 꾸미고 인천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12월 28일, 두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총격으로 일본 경찰과 동척 직원 등이 숨지고 다쳤습니다(인원은 기록마다 다름). 황금정(지금의 을지로) 거리에서 경찰과 맞서다 포위되자 그는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고 외쳤고, 스스로 총을 겨눴습니다. 병원에서 자신이 재령의 나석주, 의열단원이라고 밝힌 뒤 약 4시간 뒤 숨졌습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1999년 옛 동척 자리(을지로)에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동척은 1945년 11월 해체됐고, 식산은행의 일은 1954년 한국산업은행 등으로 넘어갔습니다.
00:00 도입
00:39 땅을 삼킨 회사
02:21 재령의 청년
03:42 김구의 제자
05:04 마중덕이라는 이름
05:48 오후 2시 5분
06:36 황금정의 총성
07:28 그 자리에 선 동상
자료: 뉴시스(2019. 10. 13 「의열단100주년⑫」) · 서울신문(1999. 11. 19 「의열 독립투쟁⑫」 · 1992. 12. 17 「이달의 독립운동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열단」 · 위키백과 「나석주」「동양척식주식회사」「조선식산은행」
사진: 네이버 이미지 검색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영상: Pexels
※ 본 영상의 음성은 AI 음성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