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놀란 미군과 국군이 장진호에서 포위망을 뚫고 흥남까지 철수한 15일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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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놀란 미군과 국군이 장진호에서 포위망을 뚫고 흥남까지 철수한 15일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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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27일 밤, 개마고원 해발 1,000미터 산속에서 유엔군 3만 명이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됐습니다. 밤이면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져 총은 얼어붙고 모르핀은 위생병이 입에 물어 녹여야 했습니다. 길은 하나뿐이었고, 중공군은 그 길 위에 앉았습니다. 부상자를 빼내려 얼어붙은 땅에 활주로를 깎았고, 끊어진 다리는 하늘에서 떨어뜨려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군대가 걸어 내려온 길을 따라, 아무 무장도 없는 사람들이 흥남 부두까지 내려왔습니다.
*📚AI 이미지 사용 고지*
영상에서 보이는 모든 영상과 이미지는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된 AI 이미지입니다. 실제 당시의 사진이 아니므로 이 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역사 고증 — 참고 자료*
미 해병대 공식 전사 『Frozen Chosin: U.S. Marines at the Changjin Reservoir』(해병대 역사센터, PCN 19000410000) · 미 육군역사재단 「Nightmare at the Chosin Reservoir」(수석사학자 Matthew J. Seelinger) ·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 역사실 「The Refugee Evacuation from Hungnam: 9–24 December 1950」 ·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HHC) ·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Task Force Drysdale, Chosin) · 미 해병대협회 Leatherneck 「The Great Hagaru-ri Airlift」 · 미 해군연구소 Naval History Magazine · 미국 해사청(MARAD) · Warfare History Network · Britannica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장진호전투·흥남철수) · 국가보훈부 유엔참전용사 디지털 아카이브 · 한국어·영어 위키백과.
*🗣 인용·증언 출처*
· "저건 우리 애들이야" — 미 육군 제31연대전투단장 앨런 맥클린 대령이 1950년 11월 29일 얼어붙은 저수지 위로 뛰어나가며 외친 말. 미 육군역사재단 「Nightmare at the Chosin Reservoir」.
·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뿐입니다." — 올리버 스미스 소장이 1950년 12월 4일 하갈우리에서 기자들에게. Time 1950년 12월 18일자.
· "저 사람들을 두고 갈 수는 없다" — 알몬드가 부관에게 피난민 승선을 지시한 대목. 당시 부관 알렉산더 헤이그의 회고(ARSOF History 인용).
· 부두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전 재산을 등에 묶고 아이 손을 붙든) — 미 3사단 보고서.
· 2만 5천 명분 선복을 준비했으나 장진호에서 따라 내려온 인원만 그만큼이었고, 마지막 배가 떠날 때 떠난 수만큼이 부두에 남았다는 추산 — 상륙전을 지휘한 제임스 도일 소장의 회고.
· 모르핀을 입에 물어 녹이고 혈장이 얼어 못 썼다는 대목, 윤활유가 굳어 자동 사격이 안 됐다는 대목 — 참전 해병 회고 집성.
*🔢 수치 기준*
· 병력: 유엔군 약 3만 명(미·영·한), 중공군 9병단 약 12만 명·12개 사단.
· 폭스중대 240명: 공식 전사 기준(중기관총·박격포반 배속 후). 표창문은 220명, 단행본은 246명.
· 덕동고개를 맡은 중공군은 9병단 20군 예하 59사단이며 사단 편제 정원이 약 1만 명입니다. 다만 1만 전원이 그 언덕 하나에 붙은 것은 아니고, 59사단의 임무는 유담리~하갈우리 14마일 주보급로 전체 차단이었습니다. 폭스중대 진지에 직접 부딪친 규모는 자료마다 갈립니다(권리장전연구소 약 4,000명 / 봉 재향군인역사센터 3,000명 넘는 1개 연대 / 첫날 밤 전초 공격은 공식 전사 기준 중대 규모).
· 미 해병 1사단 손실: 전투 사상 4,418명, 동상 위주 비전투 7,313명. 집계 기간은 1950년 10월 26일~12월 15일이라 장진호 포위 이전 손실도 포함됩니다. 비전투 손실은 사단 병력의 약 3분의 1.
· 중공군 9병단 손실: 중국 군사과학원 계열 집계 전투 19,202 + 비전투(동상) 28,954 = 48,156명을 반올림했습니다. 서방 추정은 4만~8만으로 폭이 넓고, 영문 위키백과 현행판은 전사 7,304·부상 14,062·비전투 30,732로 달리 싣습니다.
· 피난민: 12월 9~24일 흥남·원산·성진 3개 항구 합계 98,100명(흥남 86,800 + 원산 7,000 + 성진 4,300). 같은 자료의 87,400명은 민간인이 아니라 흥남에서 철수한 병력 수치입니다.
· 12월 15일 함흥역에 몰린 인원(약 6만 명)과 흥남 일대에 모인 인원(5만 명이 곧 두 배가 되어 약 10만 명)은 다른 숫자입니다. 모인 사람이 약 10만, 배를 탄 사람이 98,100명으로 대부분이 승선했습니다.
· 메러디스 빅토리호: 정원 승객 12명·선원 47명. 12월 21일 화물을 버리기로 결정 → 22일 오후부터 26시간 승선 → 23일 출항 → 24일 부산 도착했으나 포화로 하선 거부 → 25일 거제도 장승포 도착. 승선 인원은 자료에 따라 14,000명·14,500명이 병존합니다. 항해 중 사망 0명·출생 5명은 미국 해사청이 「단일 선박에 의한 해사 사상 최대의 구조」로 기록합니다. 다섯 아기의 애칭 「김치 1호~5호」는 승무원들이 붙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 미 8군과 미 10군단을 갈라놓은 산줄기는 낭림산맥입니다. 태백산맥은 원산 이남 구간의 이름입니다.
· 알몬드와 스미스는 당시 둘 다 소장입니다. 알몬드는 맥아더 극동군사령부 참모장을 겸해 중장 보직인 군단장을 소장으로 맡았고 중장 진급은 1951년 2월입니다. 계급이 같아도 군단장과 예하 사단장이라는 보직상 지휘관계가 성립합니다.
· 맥아더가 해상 철수를 지시한 것은 12월 8일, 작전 개시는 12월 9일, X군단 작전명령 10호는 12월 11일입니다. 본편은 12월 9일 기준으로 서술했습니다.
· 하갈우리 활주로 후송 인원은 본편 4,369명(Leatherneck 계열). 공식 전사는 12월 첫 닷새 4,312명으로 적습니다.
· 교량 공중 투하는 12월 7일 오전 9시(C-119 8대, 세트당 약 2,500파운드), 차량 통과는 12월 9일입니다. 끊긴 폭은 24피트 기준이며 19·29피트 표기도 있습니다.
· 맥클린 대령은 11월 29일 피격·납치된 뒤 포로 상태에서 사망했고, 페이스 중령은 12월 1일 전사했습니다.
· 장진호 동쪽 부대가 상대한 것은 중공군 80사단(영문 위키백과는 81사단 242연대 증원). 미 육군역사재단은 이 부대가 닷새 동안 동안의 진격을 막아 서쪽 해병대가 하갈우리로 물러날 시간을 벌었고 80사단을 격파했다고 기술합니다.
· 1081고지에서 확인된 중공군 전사자 530명은 단일 출처(미 해군연구소) 기준입니다.
· 흥남 최종 출항은 12월 24일 오후 2시 34분입니다. 12월 25일은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에 도착한 날입니다.
· 기온은 낮 영하 20도, 밤 영하 30도대이며 미측 기록은 야간 화씨 영하 35도까지 적습니다.
· 흥남 부두 폭파는 수중폭파대(UDT-3)의 20톤 이상 폭약에 반출하지 못한 탄약·항공폭탄·유류가 더해진 것입니다. 「폭약 400톤」·「한국전쟁 최대 폭발」은 계량 근거를 확인하지 못해 쓰지 않았습니다.
· 거제에 정착한 부부의 아들이 훗날 대통령이 되었다는 대목: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문용형·강한옥)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남하해 거제에 정착했고, 문 전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 배에서 태어난 다섯 아기와는 무관합니다. 탑승한 배는 기록이 엇갈립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로 적은 근거는 본인의 2017년 6월 장진호 전투 기념비 기념사("빅토리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제 부모님도 계셨다")와 청와대가 2018년 공개한 생존 선원과의 서신이며, 자서전 『운명』(2011)과 거제 지역 기록은 12월 24일 LST 온양호로 적습니다. 본편은 본인의 공식 발언을 따랐습니다.
· 「총이 얼면 소변으로 녹였다」·「전투식량을 도끼로 깨 먹었다」는 권위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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