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하나님께_기도하매#창20:14-18#김천부상교회#20261004
예수산소망(황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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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하나님께_기도하매#창20:14-18#김천부상교회#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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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산소망(황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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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자기 거짓말이 드러난 후, 기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자기를 보호하려다 모든 것, 아내 사라와 하나님의 언약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대신 일하시자 잃었던 아내뿐만 아니라
은금과 종들, 그리고 거주할 땅의 자유까지 얻게 되었다(14-15절).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지키려고
몸부림 치는 자기 긍정이나 자기 방식, 자기 경험과 생각, 계획을 멈추고,
나의 모든 삶의 의지를 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탁을 하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16절에서 이방 왕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징계를 면한 후,
사라에게 말하며 거액의 은(배상금)을 주어
그녀의 훼손될 뻔한 명예를 회복시키고 무죄함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아비멜렉은 여기서 아브라함을 '너의 남편'이라 부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이 말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어냈던
비겁한 변명, ‘나의 누이라 하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방 왕의 입을 통해, 아브라함의 거짓말과 얄팍한 생존 본능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족장이자 선지자였지만,
이 순간 이방 왕 앞에서 극심한 영적 수치를 겪으며
자신의 거짓된 옛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주인 되어 세웠던 안전장치, '오빠-누이' 전략은 가장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것임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의 시작이다.
17절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을 호통치고 꾸짖은 이방 왕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한다.
아브라함 입장에서 이 순간은 자존심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상태였다.
원인 제공자이자 가해자는 아브라함 본인인데,
피해자인 아비멜렉을 위해 영적인 축복을 빌어야 하는
참으로 난감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내가 남보다 낫거나 의롭다고 여길 때 당당하게 남을 위해 기도하려 한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아브라함의 영적 자만심과 윤리적 자존심은 철저히 깨진 것이다(자아 파쇄).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겠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을 '부인'하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간 것이다.
"내가 잘나서 중보자가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일방적 부르심(창 20:7, 그는 선지자라) 때문이구나"를
뼈저리게 인정하는 완벽한 자기 부인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내 의로움이 철저히 부정된 자리에서 드려지는 기도, 이것이 자기 부인의 정점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내 인생을 통제하려는 불안한 운전대를
하나님께 온전히 넘겨드릴 때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얕은 속임수는 모두 부인당했고
그는 철저히 수치를 당하는 '십자가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자신의 수치를 무릅쓰고 자존심을 비운 채,
순종함으로 남을 위해 축복(17절)했을 때 기적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부끄럽고, 더러우며 수치스러운 자리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기다리는 낮은 자리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