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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듣는 삶]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는 것들 vs 선명하게 하는 것들"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 성경 속에 답이 있다

Word Ministry In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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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듣는 삶]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는 것들 vs 선명하게 하는 것들"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 성경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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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링크 :    •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 크리스찬 BGM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오래전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나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지만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할 때 더 잘 들을 수 있는지 대해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여러분 성경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양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이번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제한되고, 어떻게 할 때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해 함께 배우기 원합니다. 먼저 무엇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고향에 방문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고향에서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배척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까?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하면서 배척을 합니다(마 13:55). 우리가 너도 알고 가족도 다 아는데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났느냐 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지만,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요? 자신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아무리 이적과 기적을 행했다 할지라도 안식일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이 결코 선지자나 메시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예수님을 이단시까지 한 것입니다(요 9:22). 즉, 자신들의 신학적 편협한 틀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판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이 제한될 수 있느냐?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신학적 관점으로 판단하며 제한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향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생각으로 예수님을 판단했을 때, 예수님의 능력 행함이 제한되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편협적인 신학적인 틀로 인해 메시아인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렇듯,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 신학적인 관점이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이 제한될 수 있느냐? 그것은 우리가 “거룩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음성 듣기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로고스의 말씀 중에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성령님을 통해 “레마”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심으로 우리에게 레마로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하지 못할 때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레마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세상과 구별되지 않은 삶을 산다거나, 죄를 버리지 못하고 살아갈 때, 거룩하신 성령님이 이런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령이 충만했던 베드로나 바울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보자기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까?(행 10:11-16)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환상을 통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지시받지 않았습니까?(행 16:9) 그런데 여러분, 이들이 만약 거룩하지 못하고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삶을 살았다면, 과연 이들이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통로로서 거룩하지 못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투영되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 신학적 관점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통로가 거룩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들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러한 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는 요소들인데, 그럼 반대로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제한받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는 먼저 내 생각이나 지식, 신학적 관점으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을 것입니다(창 28:3).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 아닙니까? 또, 우리는 하나님(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믿습니다(히 13:8).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어제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과 미래의 하나님이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는 말 아닙니까? 여러분, 이 믿음을 하나님의 음성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구약에서 하나님이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시고, 신약에서 계시와 감동으로 말씀하셨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이렇게 동일한 방법으로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지식, 신학적인 틀로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어떤 때는 꿈을 통해, 때로는 환상을 통해, 어떤 때는 계시를 통해, 감동을 통해, 사람을 통해, 설교를 통해, 레마를 통해, 환경을 통해, 고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나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도 성경에서처럼 동일하게 나에게 말씀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음성이 제한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우리가 또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음성이 나에게 흘러올 때 이것이 제한되지 않도록 내 통로를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니엘이 꿈과 환상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봅니다. 또한 꿈과 환상, 계시를 통해 성경까지 기록하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다니엘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듣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다니엘이 늘 자신의 영적인 통로를 거룩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니엘은 자신의 거룩하기 지키기 위해 고기 음식을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왜요? 포로였던 자기에게 오는 고기 음식이 우상에게 먼저 드려진 후에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왕의 명령을 통해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죽이고자 했을 때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췄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다니엘이 성경을 쓸 정도까지 꿈과 환상과 계시가 열리게 되었느냐? 그것은 하나님 앞에 늘 거룩한 통로로 서고자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물(롬 12:1)로 드리기 위해 치열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 믿음을 공격하는 자신의 육체의 소욕과 세상의 것들과 죄와 싸우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림을 그릴 때 도화지가 깨끗하다면 물감이 조금만 묻어도 표시가 납니다. 진하다면 더 확실히 보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거룩하므로 깨끗하다면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을 말할지라도 우리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하면 거룩할수록 더 선명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거룩한 사람들을 통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니엘을 통해 말씀을 하신 것이고, 사도 바울 통해 말씀하신 것이고, 모세, 아브라함,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거룩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까지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통로로 서고자 애를 쓴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더 다양한 방법으로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제한하거나 혹은 더 선명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양으로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선명하게 듣고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