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고모령/ 기타시인의 클래식기타로 연주하는 트로트 / Korean old song "Raining Komoryong”
Poet of guitar (기타시인 Dugyu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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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고모령/ 기타시인의 클래식기타로 연주하는 트로트 / Korean old song "Raining Komor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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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of guitar (기타시인 Dugyu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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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of guitar's classical guitar......
기타시인의 연주
비내리는 고모령의 내역
광복 직후 경남 밀양이 고향인 가요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하고, 유호가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는 다소 혀짧은 목소리로 턱을 떨며 구성지게 곡을 소화한 ‘현인’의 목소리로 취입돼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노래로 지금도 노래방에서는 중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이다. 이 노래의 무대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파크호텔 남쪽길에서 팔현마을 로 넘어가는 고개인 고모령.
먼저 파크호텔의 초입에 서 있는 ‘비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를 찾았다.
키작은 조릿대와 소나무, 벚나무 등을 배경으로 한 채 도로 귀퉁이에 서있는 이 노래비는 지난 1991년 초대 수성구 의회의 개원을 기념하는 사 업으로 제막된 것이다. 이 노래의 무대가 이곳 고모령임을 고증하고, 향수 와 어머니를 그리는 절절한 사연의 이 노래가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 원이 노래비의 뒷면에 새겨져 있다. 노래비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한켠에 는 고모령을 취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전 한국일보 사진부 김문호 기자 의 불망비가 자리잡아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가사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파크호텔과 만촌자전거경기장 사잇길을 지나면 동쪽으로 나즈막히 보이는 고개가 바로 고모령이다. 얼른 보기에는 고개라기 보다는 그냥 언덕길이라 는 게 옳을 듯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 곳이 고향을 떠나는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놓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던 그 고모령인 것을. 고모령의 전설보기
파크호텔과 경부선 철길 사이로 좁다랗게 난 포장도로를 따라 고모령을 넘는다. 길을 넓힐 터가 부족하다 보니 인도는 아예 없다. 고갯길 옆에 는 고갯마루를 깎아 턱을 낮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이 보 다는 한결 고갯마루가 높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 고개에다 ‘영(嶺)’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나마 덜 어색했을 것이다.
고갯마루에서 곧장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팔현마을. 철새보호지로 지정될 만큼 아직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마을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이 길게 뻗은 마을을 감싸고, 경부선 철도 너머 잡목이 무성한 산은 제 법 높아 어쩐지 노래 속의 어머니와 아들이 이별하던 그날처럼 함께 울어 줄 부엉새가 이 산 어디쯤에 아직은 둥지를 틀고 있음직하다. 그러나 부엉 새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만한 자리를 찾다보니 우리 일행도 어쩔 수 없이 철길을 오르게 된다. 연신 기차는 지나가고, 야트막한 고모령이 한 눈에 들어오 는 자리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이래서 한 젊은 사진기자가 이 곳에서 희생된 모양이다.
인적이 드문 팔현마을의 한 농가를 찾아가자 10 여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짖어댄다. 길손을 맞아준 아낙네는 극성스런 개들의 소란이 미안한 지 “ 이런 곳에서는 개를 키우지 않고는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 곳에 사는 사 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저 볼품 없는 고개가 무슨 ‘영’이냐”고 묻자 “지금이야 고개같지도 않지만 옛날엔 달랐다”고 반박한다. 길도 사람이 혼 자 자전거를 끌고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고, 고개턱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 았단다. 한마디로 그땐 고개다웠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비내리는 고모령 ’이 이곳을 무대로 지어졌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팔현마을 일대는 모두 수십년째 그린 벨트로 묶인 지역. 그래서 대구의 변두리지역답지않게 낡은 집들이 유난히 많다. 멀리서 보면 움막 비슷한 집도 눈에 띈다. 노랫 속의 어머니와 아들이 살던 시절과 비교하더라도 크 게 바뀌지않은 마을분위기는 오로지 그린벨트 덕분일 것이다. 그 바람에 주 민들은 수십년동안 참담한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개발의 뒷전에서 소외된 채 변화없는 마을로 머물고 있는 것. 금호강 건너 우뚝한 아파트촌이 그래 서 더욱 대비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팔현마을에서 경부선 고모역은 자동차로는 지척의 거리. 노랫말 속에는 나오지않지만 당시 이 일대 주민들이 갖가지 사연으로 고향과 이별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한 역일 것으로 짐작돼 고모역을 찾았다. 하루에 고작 통일 호 다섯대만 정차하는 고모역은 경부선의 역사 답지않게 초라하다. 하루 이 용승객도 5 명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역앞 마을 역시 슬레이트를 덕지덕지 이은 낡은 주택들이어서 퇴락한 농촌마을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 다시 노래비앞에서 노랫말을 천천히 읽어 본다. 고향을 떠 나고, 부모와 오랫동안 헤어져야 하는 이별이 별스레 가슴 저미는 감정을 자아내지도 못하는 이 시대에 이 노랫말과 가락이 이처럼 가슴에 와닿는 것을 보면 기자 또한 이미 기성세대가 된 모양이라는 생각에 새삼 쓸쓸해 졌다.
적어가면서 오늘밤도 불러본다 망향의 노래
글 : 정근재 [영남일보기자]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 올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해 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출처열차사랑의 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