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 일곱시의 발코니🕯️ ASMR
낮잠 NZ Amb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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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 일곱시의 발코니🕯️ AS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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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르크 아저씨는 죽음마저 고상했다. 나는 그의 끝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었다.
아침 일곱 시. 그늘 한 점 드리우지 않은 남동향의 발코니. 햇빛 아래 벌겋게 익어 버린 앙상한 팔다리. 아저씨는 야외용 의자에 반쯤 누운 듯이 앉아 있었다. 낡고 닳은 하늘색 셔츠 사이로 드러난 백금색 가슴털, 식사 때마다 곁들인 와인으로 인해 불룩해진 배도 평소와 같았다. 초점 없는 올리브색 동공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가 지난 몇 주간 그랬듯 멍하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라 여겼을 것이다.
흰색 난간벽 아래 닿을 정도로 길게 뻗은 발치에는 와인병 촛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빈 와인병 위에 양초를 꽂고 불을 붙이곤 했다. 비가 오지 않는 저녁마다 벌이는 의식이었다. 아저씨는 내게 성냥을 맡겼고 나는 서툰 몸짓으로 불을 붙였다. 가냘픈 성냥은 늘 두세 개쯤 톡톡 부러져 버렸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게서 성냥을 빼앗거나 라이터를 건네지 않았다. 그 인내 덕분에 나는 수많은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녹아내린 촛농들이 오늘 아침에도 와인병 표면에 시체처럼 딱딱히 굳어 있었다.
셀마 아줌마를 불렀다. 나는 침착했고, 아줌마는 비명을 지르며 발을 구르고 얼굴을 감쌌다. 구급차와 경찰이 연달아 도착했다.
나는 페인트를 노랗게 칠한 거실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이따금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내가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른다는 사실에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여자 경찰은 영어조차 유창하지 않은 나를 어린 가정부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셀마가 나를 한국에서 온 홈스테이 학생이라고 소개한 뒤에야 정상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시간은? 일곱 시 정각이요.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기억할 수 있죠? 성당 종소리를 들었어요. 왜 아침 일곱 시에 발코니에 나갔죠? ……아침이니까요. 아침마다 발코니에 나가나요? 네, 외르크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고 나는 그 옆에서 책을 읽거든요.
서툰 영어와 독일어만으로도 대화는 무리 없이 이어졌다. 경찰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동안 나는 아저씨의 재떨이에서 슬쩍한 담배 하나를 왼손 주먹 안에 넣고 내내 짓이기고 있었다. 아저씨가 얇은 종이에 담뱃잎을 넣고 침을 묻혀 얇게 돌돌 말아서 재떨이 위에 걸쳐 놓은 것들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나는 담배 혐오자였다. 특히 이른 아침 등교 시간에 우연히 맡는 연기를 최악이라 여겼다. 봄의 꽃내음과 여름의 풀냄새, 가을의 건조한 바람과 겨울의 시린 맑음을 완벽하게 망치려 드는 암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하지만 외르크 아저씨의 담배만은 썩 괜찮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곱 시마다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말아 피웠고 나는 재떨이가 놓여 있는 유리 테이블 옆에 앉아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 연기를 마시면 가벼운 멀미가 났는데, 그럴때면 책과 함께 가져온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힐끗 보았고 나는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이 집에 온지 사흘째 되던 날부터 시작된 일과였다.
셀마 아줌마는 나를 품에 안고 어린애처럼 목놓아 울었다. 나보다 키가 약간 더 큰 그녀의 푹신한 가슴팍에서는 유기농 오렌지 오일과 인센스 스틱의 잔향이 풍겼다. 나는 셀마의 슬픔을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셀마가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벌써부터 울기 시작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나는 귀국을 불과 일주일 남짓 앞두고 있었고, 마음이 급했다. 끝까지 읽기로 약속한 책을 마저 다 읽고 외르크 아저씨와 감상을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감상회에서는 브랜디를 섞은 커피를 (셀마 아줌마 몰래) 나누어 마시면서, 각자 좋아하는 문장을 각자의 언어로 낭송하기로 했다. 와인병 양초들이 거실창 너머에서 별처럼 일렁이는 저녁이어야 했다. 물론 내가 성냥으로 직접 붙인 불꽃들이다. 셀마가 품에서 나를 놓아 주고 욕실로 갔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거실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노란 벽에 길게 세로로 걸린 족자식 그림 속의 초상화가 된 기분이었다.
문득 헤베가 왜 아직도 집에 오지 않고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 소식을 듣지 못한 걸까? 헤베는 이 집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일은 이 집에서 유일한 타인이자 첫 번째 목격자인 나의 역할인지도 몰랐다. 셀마 아줌마는 정신이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런 중대한 일을 맡아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겨우 열여덟 살에 불과한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외르크 아저씨는 아직 끝까지 죽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실은 줄곧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외르크 아저씨는 아직 덜 죽은 상태고, 나는 그가 온전히 죽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어쩌면 아저씨가 죽음의 목전까지 갔다가 마음을 바꿔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약속한 책을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책과 물잔은 경찰이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경찰서에 가면 돌려받을 수 있을까? ‘제 책을 돌려주세요’를 독일어로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Bitte, gib mir…….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정말로 경찰서 안에서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책을 돌려달라는 독일어를 할 필요는 없었다. 발코니에 놓인 와인병들 중 하나에서 치사량의 파라콰트가 발견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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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어느 소도시, 아침을 알리는 성당 종소리, 외르크 아저씨와의 추억이 담긴 발코니, 아직 믿을 수 없는 갑작스런 부재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같이 활기찬 하루, 그곳에서 가만히 책을 읽으며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
* *
영상이 갑자기 사라져서 놀라셨지요 8ㅁ8
사운드 이슈로 재업로드하였습니다!
(출간될 책과는 무관한 내용입니당..!)
bgm
Nsee - Stranger, Forsaken
* *
*관련 문의가 많아 덧붙입니다.
위 글은 별도의 원작이 없는 순수 창작글이며
무단 배포/복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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