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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하느님께서는 티 없는 모태를 원하셨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으로 하는 성경 공부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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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하느님께서는 티 없는 모태를 원하셨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으로 하는 성경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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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들머리 묵상: 하느님께서는 티 없는 모태를 원하셨다 오직 티 없는 모태를 원하셨다 1944년 8월, 전쟁이 한창인 이탈리아. 십 년째 침대를 떠나지 못하는 한 여인에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새 공책을 한 권 마련하여라. 그 첫 장에 8월 16일에 받아쓴 글을 옮겨 적어라. 여기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라는 제목으로, 안응렬 선생의 번역을 통해 전 10권으로 소개되었던 바로 그 책입니다. 먼저 이 여인이 누구인지부터 말씀드려야겠지요. 마리아 발토르타, 1897년에 태어나 1961년에 선종한 이탈리아 여성입니다. 젊은 날 등을 크게 다친 후유증으로 1934년부터 스물일곱 해 동안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성경학자도 신학자도 아닌 평신도 환자가, 참고 서적도 없는 침대 위에서 1943년부터 몇 해 사이에 공책 백이십여 권, 일만 오천 쪽에 이르는 기록을 남깁니다. 그 중심이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를 눈앞에서 보듯 그려 낸 이 책이며, 비오 12세 교황의 권유로 195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첫 장의 표제로 성경 한 구절이 걸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활동의 처음에 나를 소유하셨다." 잠언 8장 22절, 우리 성경으로는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입니다. 왜 하필 이 구절이 첫머리에 있는지, 이야기 끝에서 그 해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받아쓰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첫 말씀은 순결의 가치입니다. "순결의 가치는 참으로 크다. 그토록 커서, 한 피조물의 모태가 그 무엇으로도 담을 수 없는 분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문장이 이어집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서 당신의 온갖 완전함과 함께 내려오셨다. 세 위격으로 머무르시고, 당신의 무한하심을 작은 공간 안에 가두셨다." 그런데 곧바로 신학적 오해를 막는 언급도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작아지신 것은 아니다." 동정녀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이 그 공간을 넓히고 또 넓혀 "마침내 하나의 하늘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 위격께서 저마다의 특성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성부께서는 창조주로서, 엿샛날에 그러하셨듯 "당신을 온전히 닮은 참되고 합당한 '딸'"을 새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존엄의 순서에서 오직 맏아드님 다음가는 "둘째로 태어난 딸"이라 불립니다. 성자께서는 마리아께도 아드님이 되셨는데, 놀랍게도 "아직 마리아의 태중에서 자라나는 한 씨앗에 지나지 않으셨을 때에 이미 당신의 진리와 지혜를 마리아께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앞당겨진 성령 강림"으로, 사랑하신 그 여인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핵심 문장이 나옵니다. 속량의 시대를 여시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옥좌로 하늘의 별을 고르지 않으셨다. 권세 있는 자의 궁궐도 고르지 않으셨다. 당신의 발 받침으로 천사들의 날개조차 원하지 않으셨다. 오직 티 없는 모태를 원하셨다." 이 문장들, 과연 성경과 맞습니까? 열왕기 상권 8장 27절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바친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하늘도 못 모시는 분을 사람 손으로 지은 집이 어찌 모시겠느냐는 탄식입니다. 발토르타의 문장은 이 천 년 묵은 탄식에 대한 하늘의 응답입니다. 하늘도 담지 못하는 분을, 한 처녀의 태가 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하늘로 만들었다"는 표현도 근거가 있습니다. 루카 복음 1장 35절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께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했는데, 이 '덮다'는 탈출기 40장 34절에서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고 할 때의 바로 그 그림입니다. 성경 스스로 마리아를 새 성막, 하느님을 모시는 새 계약의 궤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표제의 비밀입니다. 잠언 8장, 창조 이전에 하느님 곁에 있던 지혜의 노래. 교회는 트리엔트 전례 시대에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축일 미사의 독서로 바로 이 잠언 8장을 봉독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발토르타가 마리아 이야기의 문패로 걸어 둔 구절이, 교회가 같은 신비에 배정해 온 바로 그 구절이라는 것입니다. 병상의 여인이 전례학을 계산해서 골랐을까요. 이런 일치가 이 책의 신빙성을 말해 줍니다. 실제로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교황이 되기 전, 신학자 요제프 라칭거 시절에 펴낸 마리아론 『시온의 딸』에서 전례가 구약의 '지혜'를 성모님께 적용해 읽어 온 이 전통의 신학적 정당성을 옹호했습니다. 창조의 첫 작품인 지혜를 마리아로 보는 독법은 이렇게 교회의 큰 스승들이 지켜 온 길입니다. 본문 받아쓰기의 마지막은 하와와 마리아의 대비입니다. 화면 왼편, 그늘 속에서 뱀 곁에 웅크린 여인이 보이시지요. "하와 역시 티 없이 창조되었다. 그러나 하와는 스스로 원하여 자신을 더럽혔다." 반면 마리아께서는 타락한 세상 한복판에 사시면서도 "죄로 향하는 생각 하나로도" 순결을 해치신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대비, 발토르타의 창작이 아닙니다. 이미 이천 년 전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의 가르침이고,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일치의 박사'로 선포하며 이 가르침의 권위를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94항은 교부들의 그 말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다." 그리고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리라던 첫 복음이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티 없음'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교회는 1854년 비오 9세 교황을 통해 이것을 믿을 교의로 선포했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91항이 전하는 대로,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의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에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결은 제 힘으로 쌓아 올린 업적이 아니라 미리 받은 은총이며, 그 은총에 평생 한 번도 '싫다'라고 답하지 않으신 충실성입니다. 구원이 앞당겨 적용되었다는 이 교의의 논리를, 발토르타는 성령으로 잉태하심이 곧 "앞당겨진 성령 강림"이라는 한마디로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경에 무엇을 보태려는 책이 아닙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67항이 가르치듯 사적 계시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에서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오늘 보신 그대로입니다. 잠언과 열왕기와 루카복음과 교부들이 말해 온 그 신비를, 우리 눈앞에 살아 움직이게 해 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별도 궁궐도 아닌 티 없는 모태를 고르셨다면, 그분은 지금도 같은 것을 고르십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마태오 복음 8장 8절, 백부장의 고백으로 기도하지요.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고백하고서 영성체 때 그분을 모십니다. 그 순간 우리 각자가 그분을 담는 자리, 걸어 다니는 작은 감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그분을 모시기 전 그 순간만이라도 성모님의 하늘 같은 순결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먼지를 털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깨끗한 자리를 원하십니다. 이탈리아 몬테팔코의 십자가의 성녀 글라라가 그 증인입니다. 1268년에 태어나 1308년에 선종한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장인데,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다며 슬퍼하시는 환시를 보고 "제 심장에 꽂으소서" 하고 봉헌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선종 후 수녀들이 그 심장을 열자 실제로 십자가와 수난 도구들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이 사실은 시성 조사에서 검증되어 1881년 레오 13세 교황이 그를 시성했습니다. 부패하지 않은 성녀의 시신과 그 심장은 지금도 몬테팔코의 성당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아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순결함입니다. 마태오 복음 5장 8절에서 말하듯,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별도, 궁궐도, 천사의 날개도 아닌, 오직 티 없는 모태를 원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2장, 요아킴과 안나가 주님께 서원하는 장면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