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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조선의 머슴으로 태어난다면? 열두 살,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조선살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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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조선의 머슴으로 태어난다면? 열두 살, 남의 집 대문 앞에서

100 просмотров · 9 дн.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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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삼남(충청·전라·경상)의 한 마을. 열두 살 당신은 남의 집 대문 앞에 섭니다. 당신은 조선의 머슴입니다. 쇠죽을 끓이는 꼴머슴에서 출발해 중머슴, 상머슴, 소작농, 자작농을 지나 아홉 번째 계단까지, 한 사람의 삶을 아홉 계단으로 따라갑니다. 계단마다 당신이 하는 일, 받는 것, 기록에 남은 숫자를 하나씩 꺼내 봅니다. 머슴이 노비와 어떻게 다른지, 사극 속 이야기가 기록과 어디서 갈리는지도 짚습니다. 삶을 곱게 꾸미지도, 일부러 더 비참하게 그리지도 않았고,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부분은 그 한계를 분명히 밝힙니다. 챕터 0:00 조선 시대 머슴의 삶은 어땠을까? 0:16 조선 시대 꼴머슴은 새경을 받았을까? 2:33 중머슴은 새경을 얼마나 받았을까? 4:48 상머슴의 새경은 정말 쌀 한 섬이었을까? 7:04 호미씻이 날 장원 머슴은 왜 황소를 탔을까? 9:19 입안을 받은 고공이 주인을 때리면 어떤 벌을 받았을까? 11:27 머슴은 혼례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13:34 조선 시대 소작료는 수확의 절반이었을까? (1727년 호서) 16:01 1877년 남원에서 논 한 마지기 값은 얼마였을까? 18:09 머슴 출신도 머슴을 두는 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 20:20 머슴살이를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알려 드립니다 영상 속 주인공과 억쇠, 정 생원은 이야기를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입니다. 아홉 계단은 이해를 돕는 이야기의 틀이며, 한 사람이 실제로 이 순서대로 올랐다는 기록이 아닙니다. 숫자는 시대와 지역이 서로 다릅니다. 1727년 호서(충청도 일대)의 보고, 1786년의 고공 법, 1850년대 예천의 품삯, 1877년 남원의 매매문서, 20세기의 민속·조사 기록입니다. 영상에서 연도와 지역을 밝혔고, ‘우리 계산’은 서로 다른 지역과 시기를 견준 어림값입니다. 조선 시대 머슴의 새경 액수는 기록에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벼 서너 섬’은 후대의 기록이고, 열 냥은 평균 새경이 아니라 1786년 법이 적용되는 조건입니다. 호미씻이 장면은 후대 민속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1950년대 조사에서 35명(6.7퍼센트)은 15년 넘게 머슴살이를 했고, 198명은 아버지도 머슴이었습니다. 계단을 오른 비율은 아닙니다. 머슴으로 살았던 분들은 실제로 존재한 사람들입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대본과 숫자는 아래 자료로 확인했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머슴’(장영민), ‘고공(雇工)’(한영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머슴날’, ‘호미씻이’, ‘추석’, ‘들돌들기’, ‘상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표준 양기’, ‘곤형’ 『비변사등록』 82책, 영조 3년(1727) 10월 22일 호서 보고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농촌의 빈부 격차) 『백헌총요』 고공 조항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대명률』 형률 투구(鬪毆) 조 Ki-Joo Park, Donghyu Yang, ‘The Standard of Living in the Chosŏn Dynasty Korea in the 17th to the 19th Centuries’, Seoul Journal of Economics 20(3), 2007 전북일보 이병규, ‘조선시대 논 한 마지기의 가격은?’ (2004년 7월) 디지털부여문화대전 ‘새경’ 다음 편은 주막의 부뚜막 앞에서 시작합니다. #조선시대 #머슴 #역사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