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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없이 버텨낸 6·25 전쟁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7일

역사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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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없이 버텨낸 6·25 전쟁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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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의 그 닷새. 전차 한 대 없던 국군은 어떻게 그 시간을 막아냈고, 그 결정이 오늘 우리 머리 위 핵우산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사료의 인물 이름으로 정리한 6·25전쟁 정전 73주년 헌정 영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전차 242대와 항공기 211대로 닷새 안에 부산까지 끝낸다고 계획했습니다. 한국군의 전차는 영 대. 그 비대칭 앞에서 그 일주일을 사들인 분들이 있었습니다. 옥산포의 심일 중위가 자주포 두 대를 막은 그 시간, 시흥지구 김홍일 소장이 한강선을 6일간 사수한 그 시간, 죽미령의 스미스 부대 540명이 6시간 30분을 저지한 그 시간, 다부동의 백선엽 1사단이 12일간 328고지를 15번 빼앗긴 그 시간. 그 시간들이 합쳐져 인천상륙작전 261척, 흥남철수 메러디스 빅토리호 14,000명, 그리고 1953년 6월 18일 자정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2만 7천 명 석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날 자정의 결정 하나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국의 장기 경제원조와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 약속으로 묶여, 2026년 6월 정전 73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