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ейти к содержимому

3.5달러 총을 22달러에… 공황을 막은 JP모건, 1861년 청구서 한 장 #JP모건 #월가

뒷장부

0:00 / 0:00

3.5달러 총을 22달러에… 공황을 막은 JP모건, 1861년 청구서 한 장 #JP모건 #월가

39 просмотров · 8 дней назад
뒷장부
39 просмотров · 8 дней назад
1907년 11월 2일 밤, 뉴욕 36번가의 한 개인 도서관으로 은행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새벽 3시, 집에 가려던 젊은 은행가는 현관문이 잠겨 있었고 열쇠는 도서관 주인의 주머니에 있었다고 회고했죠. 중앙은행이 없던 미국에서, 한 사람의 서재가 공황을 막는 마지막 창구가 된 밤이었습니다. 그 서재의 주인은 지금도 JP모건이라는 은행 이름으로 남아 있는 피어폰트 모건입니다. 1895년에는 금 350만 온스로 재무부의 금고를 채웠고, 1901년에는 자본금 14억 달러의 US스틸을 세웠습니다. 1912년 하원 청문회에서 그는 신용의 첫째는 돈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그의 이름은 그보다 51년 전, 1861년 연방 하원의 한 보고서에 먼저 적혀 있었습니다. 49쪽에 실린 청구서 한 장, 미합중국이 피어폰트 모건에게 지급할 5만 5,550달러. 남북전쟁이 시작된 해, 육군이 3달러 50센트에 판 총이 22달러에 되팔린 거래였습니다. 그리고 그 거래의 돈줄이던 은행가가 하원에 처음 나가 증언한 날은, 모건의 결혼식 바로 다음 날이었죠. 결핵을 앓던 첫 아내 미미는 결혼 넉 달 열흘 만에 니스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51년 뒤 공개된 그의 유언장 제11조에는, 그 첫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907년 공황과 연방준비제도의 탄생, 월가의 은행가 J.P. 모건의 마지막 1년까지 따라가 봅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제도, 여러분은 어느 쪽을 더 믿으시나요? #JP모건 #월가 #1907년공황 #연방준비제도 #인물다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