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까지 21km, 북한군은 다부동에서 왜 멈췄나 — 김일성의 ‘9월 1일'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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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까지 21km, 북한군은 다부동에서 왜 멈췄나 — 김일성의 ‘9월 1일'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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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북한군 13사단은 상주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남하해 대구 21킬로미터 앞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영상은 위키백과와 연구서, 한국 신문과 전사에 남은 기록을 바탕으로 다부동 돌파, 8월 21일 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진 미군과 한국군의 지뢰·전차·포병 매복, 그리고 13사단이 4천 명의 보충병으로 재건되어 9월 공세에 다시 나서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대구는 북한군이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곳이었지만 끝내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9월 1일까지 전쟁을 끝내라고 명령했으나, 보급 부족과 강제 징집, 인천상륙으로 북한군은 9월 중순 퇴각했습니다. 이 영상은 북한이 5만에서 6만 명을 잃고 거의 모든 전차를 상실한 과정과, 21킬로미터의 거리가 왜 줄어들지 못했는지를 기록으로 살펴봅니다.
00:00 대구 21킬로미터 앞
01:20 기록의 한계
03:53 낙동강 도하와 대구 포위
08:17 다부동 돌파와 8월 21일 밤
10:03 전투 피해와 전사자 수
11:29 13사단 재건과 김일성 명령
15:24 9월 1일 공세 시작
17:20 인천상륙 전후 퇴각
20:47 시청자 이야기 요청
출처:
Roy E. Appleman,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
영문 위키백과, Battle of the Bowling Alley
영문 위키백과, Battle of Tabu-dong
영문 위키백과, Great Naktong Offensive
영문 위키백과, Battle of Pusan Perimeter
TAGS: 다부동 전투, 낙동강 방어선, 한국전쟁, 6.25 전쟁, 북한군 13사단, 대구 전투,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 T-34 전차, 미군 27연대, 한국군 1사단, 백선엽, 칠곡, 왜관, 유엔군, 김일성, 1950년 8월, 한국전쟁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