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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 제5부 [믿음. 순종. 온유. 땅] 마태복음 5:5 주일예배 26.10.18

주영광교회ㅣ성경개념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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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 제5부 [믿음. 순종. 온유. 땅] 마태복음 5:5 주일예배 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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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 오전11:00, 오후1:30 ■ 찬양기도회: 화~목 am10:30~12:00 ■ 주소 : 인천시 미추홀구 인주대로 297 ■ 전화 : 0507-1416-9490 팩스 : 0504-004-9490 M.P : 010-4742-9490 E.M : adullamch@kakao.com ■ 사역후원: 1000 3270 8841 신한은행 아둘람복음공동체 ■ JOY UP 성경개념잡기세미나 : 토요일 am10:00~12:00 ■ 현명인목사 블로그 https://m.blog.naver.com/hmi0070 ■ 영상큐티    • 영상큐티.현명인목사   ■ CBS 말씀의 향기 설교 : 현명인목사 https://www.cbs.co.kr/mission/sermonR... ■■ 설교정리 ■■ 1. 온유한 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예수님의 가르침 1) 사람들이 생각하는 온유 ① 온유한 사람은 성격이 온순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②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부탁을 받으면 자신의 형편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생각한다. ③ 가정과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불평과 원망을 삼가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④ 그러나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온유함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함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다. 2) 인간적인 온유함만으로는 천국을 상속받을 수 없다. ① 설교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가정한다. 그는 율법과 계명을 잘 지키고, 아내와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는다. ②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듣고 자신처럼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고 생각한다. ③ 이것은 인간적인 성품과 선행을 천국 상속의 근거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가 단순히 부드러운 성격이나 착한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④ 구원은 인간의 수고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그 믿음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나타난다. 에베소서 2:8~9 — 구원은 은혜로 믿음을 통해 받으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자랑할 수 없다. 야고보서 2:17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2. 세상에서 말하는 온유함과 강력한 지도력 1) 온유함과 권력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른 개념이다. ① 역사적으로 강력한 지도자들은 전쟁과 정복 과정에서 냉혹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을 죽인 자를 살인자라고 부르면서도,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을 정복자나 영웅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② 나폴레옹과 칭기즈칸 같은 정복자들의 역사는 권력과 군사적 성공이 반드시 온유한 성품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③ 마키아벨리는《군주론》 제17장에서 군주가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무엇이 더 안전한지를 논하면서, 둘을 함께 얻기 어렵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정치 현실에 대한 그의 분석이지, 모든 상황에서 폭력과 냉혹함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④ 설교가 강조하는 점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지도자의 성품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인 온유함을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 강한 지도력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양립할 수 있다. ① 창세기 14:14~16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훈련한 318명을 거느리고 적을 추격해 롯과 사람들을 구출한다. ② 아브라함은 단순히 유순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설교는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행동한 점을 강조한다. ③ 여호수아도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여호수아 10:22~27에는 아모리 다섯 왕을 처형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④ 이러한 전쟁 기록은 고대 근동의 정복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읽어야 한다. 전쟁에서의 군사적 행동 자체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폭력이나 잔혹함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⑤ 하나님이 보시는 온유함은 단순히 겉으로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다. 3. 성경이 말씀하는 온유의 본질 1) 모세의 온유함 ① 민수기 12:3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②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40년을 보냈고,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③ 출애굽기 17:8~13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고, 여호수아는 전장에서 싸웠다. ④ 이 사건을 통해 모세가 자신의 군사적 판단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신뢰하고 따랐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앞세우지 않고 순종하는 태도가 온유다. ⑤ 다만 민수기 12:3의 히브리어 ‘아나브’는 겸손함, 온유함, 낮아짐 등의 의미를 지니며, 본문에서는 모세의 태도와 처지를 둘러싼 문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온유를 단순히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 하나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온유는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이다. ① 히브리서 11:8 —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갔다. ② 아브라함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지식으로 완벽하게 이해한 다음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말씀을 따라 움직였다. ③ 사무엘상 15:22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④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순종으로 나타난다. ⑤ 온유는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지 않는 영적인 태도다. 3) 온유와 예수님의 가르침 ① 마태복음 11: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② 예수님은 온유를 설명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셨다. ③ 마태복음 26:39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잔이 지나가기를 기도하셨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셨다. ④ 예수님의 온유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거나 의지가 약한 태도가 아니다. 고난을 아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신 순종이다. 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욕망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4.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 1) 기업과 상속의 의미 ① 성경에서 기업은 물려받는 몫이나 유업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지파와 가문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② 민수기 26:52~56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지파와 가족에 따라 땅을 분배받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땅은 생계와 가족의 존속,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③ 그러나 마태복음 5:5의 ‘땅’은 개인이 부동산이나 재산을 얻는다는 약속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④ 시편 37:11에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을 누린다는 약속이 있다. 예수님은 이 시편의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의 미래를 선언하셨다. ⑤ 마태복음 5:5의 ‘땅’은 구약의 약속과 연결되며, 신약 전체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의 나라와 새 창조의 소망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새 하늘과 새 땅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보다 구약의 땅 약속과 종말론적 완성의 관계를 함께 살피면서 설교 듣기를 권면한다. 2)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 ① 베드로후서 3:13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② 요한계시록 21:1 —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③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업은 일시적인 세상 재산이 아닌 하나님이 완성하실 영원한 나라다. ④ 이 땅에서 부동산과 재산을 소유하더라도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세상에서 얻은 재산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지 않는다. 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궁극적으로 소망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 더 많은 땅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에 참여하는 일이다. 3) 유대인의 역사적 배경과 예수님의 말씀 ①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갈릴리와 유대 지역의 많은 주민은 농업과 토지에 생계를 의존했고, 세금과 경제적 부담을 겪었다. ② 구약의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따라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을 단순한 부동산 취득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깊은 영적 의미로 봐야한다. ③ 시편 37편은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난을 대조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하나님 기준의 선)을 행하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땅(새하늘 과 새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④ 마태복음 5:5는 이러한 구약의 소망을 이어받는다. 예수님은 세상의 힘과 소유만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참된 유업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치신다. ※ 설교가 정리된 전체 내용은 {현명인 목사의 블로그}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