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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없는 수행은 무명만 증폭된다

바보붓다 fool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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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없는 수행은 무명만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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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붓다 fool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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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음이 있어야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이것을 깨닫고 난 후 진정한 닦음이 시작된다. 깨달음이 없는 닦음은 오히려 무명만 증폭시킨다. =========== 사실 오온이 공하다고 알아보는 그것도 오온이 하는 일입니다. 사념처 수행에서 몸이 공하고 마음이 공하고 느낌이 공하고 법이 공함을 알아보는 것도... 그것도 다 의식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편의상, 각이다. 알아차림이다..주시자다, 관찰자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을 다시 알아차림 하는 것입니다. 공은 공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공은 공이기 때문에 공의 부재를 공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잠들었다 해도..그것은 의식이 잠든 것이지 소소영영한 그것은 사실 깨어있습니다. 다만 그 깨어있는 그것을 알기까지는.... 공이 공임을 알려면 ..색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나면 나는 잠을 잤다..그것을 경험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온을 빌려서 오온의 공함을 보고 깨치고 색을 빌려서 공에 다가가지만 공에 이르면 그 색은 사라집니다. 달리 말하면 법신은 법신 그 스스로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소소영영한 그것은 반드시 색을 통해서 인식(인식이라는 말도 틀리지만) 되어집니다. 오온으로 형성된 연기적 자아를 통해...그것은 보여집니다. 보여진 그것을(말로 설명할 수 없는) 통해 우리는 비로소 오온이 내가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색을 통해서 공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유를 통해서 무를 관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의식이 있어서 의식 너머의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이 벌이는 모든 일은 아무리 정교한 말과 언어를 빌려도..한계가 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모를뿐입니다. 오직 모를뿐이 되면..대상도 의식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선이 되고 진리가 됩니다. #깨달음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