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한글 창제, 직접 키운 학자들이 반대해도 왜 멈추지 않았나 | 최만리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역미 (역사와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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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한글 창제, 직접 키운 학자들이 반대해도 왜 멈추지 않았나 | 최만리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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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한글 창제, 직접 키운 학자들이 반대해도 왜 멈추지 않았나 | 최만리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우리는 흔히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배웁니다. 집현전은 세종이 키운 나라의 연구소입니다. 그런데 새 글자에 반대하는 글을 왕에게 올린 사람들도 바로 집현전 학자들이었습니다.
1443년 겨울,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적습니다. 언문은 그 시절 한글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학자들과 세자가 도운 것은 맞지만, 실록은 임금이 직접 지었다고 적었습니다.
두 달도 지나지 않은 1444년 2월,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 7명이 반대 상소(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의견 글)를 올립니다. 중국을 섬겨 온 조선이 중국과 다른 글자를 쓰면 예의에 어긋나고, 쉬운 글자가 생기면 어려운 학문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세종은 "운서를 아느냐"며 직접 따져 묻습니다. 운서는 한자의 소리를 정리한 사전입니다. 그리고 상소에 이름을 올린 7명을 의금부(나라의 큰 죄를 다스리던 관청)에 가뒀다가 이튿날 풀어 주고, 정창손은 벼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세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446년, 새 글자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글자의 원리와 쓰는 법을 풀어 쓴 책, 해례본도 함께 나왔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은 이 책 끝에 적힌 날짜에서 왔습니다.
그 뒤에도 나라의 중요한 문서는 한자로 썼고, 많은 양반이 한글을 낮춰 보았습니다. 1504년 연산군은 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한글로 편지와 쪽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글자는 살아남았지만, 해례본은 수백 년 동안 자취를 감췄습니다.
194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다스리던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해례본이 다시 나타납니다. 우리 문화재를 지켜 온 간송 전형필이 큰돈을 치러 이 책을 사들였고, 나라를 되찾은 뒤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이 책으로 한글을 만든 원리가 밝혀집니다. 기본 자음 ㄱ·ㄴ·ㅁ·ㅅ·ㅇ은 소리 낼 때 혀·입·이·목구멍의 모양을, 기본 모음인 점(·)·가로줄(ㅡ)·세로줄(ㅣ)은 하늘·땅·사람을 본떴습니다. 나머지 글자는 대부분 여기에 획을 더하거나 합쳐 만들었습니다. 해례본은 지금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까지 기록으로 남은 글자는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한글은 그 몇 안 되는 글자입니다.
장면별 시간
0:00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반대
0:40 말은 있는데, 적을 글자가 없었다
2:03 1443년, 세종이 '친히' 지은 28자
2:59 1444년 최만리의 반대 상소
3:43 세종의 반박 "운서를 아느냐"
4:31 의금부에 갇힌 학자 7명
4:58 1446년 훈민정음,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
5:29 한글을 금지한 연산군
6:10 사라진 설명서, 해례본
6:31 1940년 안동, 간송 전형필이 지킨 책
7:06 한글은 무엇을 본떠 만들었나
7:43 1926년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7:57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주본
8:28 지금 이 자막을 읽는 당신에게
영상 속 상소와 대화는 실록 기록을 쉬운 우리말로 풀어 옮긴 것이고, 장면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한 재현입니다.
참고: 세종실록(세종 25년 12월 30일, 26년 2월 20일), 연산군일기(연산군 10년 7월 20일), 국립한글박물관, 국립국어원, 국가유산청
세종대왕 동상 사진: Skyler W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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