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사람이 되는 걸까 [휴직에세이 EP28]
폴리마테스 Polymathē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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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사람이 되는 걸까 [휴직에세이 E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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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여름이었던 건 아니다.
이 아이의 시작은 흐릿한 선 하나였다. 작은 창 안에 두 번째 선이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들여다봐야 겨우 보일 만큼 흐렸지만, 그 순간 아내의 얼굴에서 엄마가 잠깐 비쳤다. 우린 한동안 그 선을 지켜봤다. 빛에 비춰보기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기도. 분명 있는 것 같았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냥 기뻐하진 못했다. 고대했던 순간이지만, 기다린 시간이 길었던 만큼 믿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이 올 때마다 우린 선을 확인했다. 그새 조금이라도 흐려지지 않았는지, 보고 싶은 걸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며칠 뒤엔 숫자가 생겼다.
41.
병원에서 알려준 호르몬 수치였다.
마흔 하나라는 숫자만큼 마음이 놓였다. 그 이상은 아직 어려웠다. 부풀어진 마음을 다시 접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우린 행복 대신 안도를 나눴다.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보다, 괜찮을 거라는 말을 더 자주 건넸다.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작고 낮은 옷들, 손바닥만 한 모자와 양말, 한 손에도 들어올 것 같은 신발들. 진열대 앞에 서서 아직 본 적 없는 얼굴을 상상한다. 눈은 누구를 닮을까. 잘 웃는 아이일까. 아내처럼 차분할까, 나처럼 조금 고집스러울까.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우리는 이미 제법 많은 모습을 그 아이에게 입혀보고 있다.
한참을 둘러보다 작은 신발 한 켤레를 골랐다. 하얀 바탕에 조그만 나뭇잎이 달려 있는 모습이 왠지 여름을 닮아있었다. 우린 거실 테이블 위에 신발을 올려두었다. 덩그러니 놓인 신발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물건처럼 보였다.
사람은 언제 사람이 되는 걸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일까. 심장이 뛰기 시작할 때일까. 아니면 아직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부터일까.
우리가 정말 이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꼭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