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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함께 가라]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 왜 사람마다 성령 체험에 차이가 날까 - 성령님의 임재 원리"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Word Ministry In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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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함께 가라]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 왜 사람마다 성령 체험에 차이가 날까 - 성령님의 임재 원리"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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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링크 :    • [Vol.3] 묵상기도를 위한 CCM 피아노 연...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댓글에 이런 문의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저의 집사님은 지었던 죄들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강력한 성령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체험이 없습니다. 교회를 다닌 지 10년이 넘었고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사모하는데 왜 저는 이런 체험을 못 하는 걸까요?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라며 질문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신앙상담 중에 이런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 중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강하게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위축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이런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어떤 분들은 강력한 성령체험을 하는데, 왜 어떤 분들은 이런 체험을 못 하는 걸까요? 이번 시간에는 왜 이러는지, 또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저는 오래전에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다른 교회 철야 예배에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교회의 철야 예배는 매주 밤 11시에서부터 오전 4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친구와 함께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는 순간 인상이 찌푸려 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기도하는데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이걸 보면서 교회가 마치 시장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니 꼭 이렇게 기도해야 하나? 하나님이 귀가 머셨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교회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도 침묵으로 기도했고, 찬양할 때도 박수도 치지 않고 거룩하게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양하면서 박수도 치고, 기도도 시끄럽게 하는 것을 보면서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바랬습니다. 아침이 와야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교회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났는데 다시 그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끌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둘째 주, 셋째 주가 되면서 문뜩 이런 갈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시 5분만 기도해도 기도할 거리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무슨 기도 제목이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기도 시간에 눈을 뜨고 사람들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밤에 이렇게 몇 시간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놀라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마음속에 “나도 저 사람들처럼 저렇게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갈망과 소원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철야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5주 차가 되어 기도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강력한 빛이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러면서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영화 스크린 같은 것이 펼쳐지더니 제가 살아오면서 지었던 죄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울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입이 꼬이면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나중에서야 이것이 “방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 강력하게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 중에도 저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강력한 체험을 해보지 못한 분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어떤 사람들은 강력한 성령 체험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체험을 못 하는 걸까요?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원합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교단이나 교회의 신학적 목회적 차이가 성령의 임재의 다른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처음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는 말씀과 거룩함을 강조하는 교회였습니다. 반면 제가 방문했던 교회는 성령님에 대해 강조하는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을 강조하는 교회에서 강력한 성령 임재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제가 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저는 본교회에서도 성령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교회에서 성령 체험을 했다면, 아마도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교단이나 교회의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차이가 성령의 임재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강력하게 체험하는 교회가 더 좋은 교회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삶에 대해 이렇게 4권으로 기록하게 하신 걸까요? 그것은 각 복음서에 다른 목적과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각 교단과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므로 다른 신학적 관점과 목적으로 교단과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교단과 교회의 신학적이고 목회적 차이로 인해 성령님의 임재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님이 불같이 임하시든, 바람같이 임하시든 이런 임재 차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모두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교단이나 교회에 소속되어 있든 상관없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날 때 모두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무엇이 성령님의 임재하심의 차이를 만드느냐? 그것은 우리의 “갈망과 소원”이 임재의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가다락방의 120문도들이 불같이 임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는 것을 봅니다. 그럼 왜 이들이 이렇게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느냐? 그것은 이들이 성령 임재에 대한 갈망과 소원이 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당시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핍박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런 핍박과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행 1:5)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컸습니까? 이것을 위해 이들이 모여 오로지 기도했다고 하지 않습니까?(행 1:14) 이런 사람들 위에 성령님이 불같이 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언제 우리에게 강력하게 임하실 수 있느냐? 우리가 강하게 갈망하며 소원할 때 성령님이 이런 사람에게 강력하게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같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다가 낭떠러지 같은 상황을 만난 사람들이 교회에 오게 되었을 때, 이런 사람들이 그 간절함으로 인해 성령님을 만날 때 강력하게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런 상황이 아닐 때는 어떨까요? 만약 모태신앙으로 평탄하게 살아왔다면 이런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런 분들에게는 상황적이나 환경적으로 강한 갈망이나 소원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성령님은 강력하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처럼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이 이렇다구요(요 3:8). 여러분 이렇듯, 우리의 신앙이나 갈망이나, 간절함이나 기질로 인해 성령님의 임재하심에 대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체험할 수 있느냐? 이것이 인간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이런 강력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메섹 도상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강력히 만나면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경우입니다. 하나님(예수님)은 바울을 종으로 쓰시기 위해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것들이 성령님이 임재하실 때 체험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단이나 교회의 차이, 개인의 신앙적, 기질적, 갈망의 차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해 성령의 임재 차이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사람이 불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했든, 아니면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했든 상관없이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결국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멕시코에서 선교를 하다 보니 대서양과 태평양을 다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태평양은 바람도 강했고 파도도 강했습니다. 반면 대서양은 태평양에 비해 더 잔잔했습니다. 그러나 맛을 보면 태평양 물이나 대서양 물이나 똑같이 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임재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불처럼 강하게 임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임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 불같이 임하셨던 바람처럼 임하셨든 거듭나서 구원받는 것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강한 태평양 물이나 잔잔한 대서양 물이 똑같이 짜듯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교단이나 교회, 개인의 신앙적 갈망이나 소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해 다양한 성령 임재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불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도 있고,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령님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듭난 이후에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고(엡 4:30) 소멸시키지 않으며(살전 5:19)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또한 중요한 것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