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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미사에서 욥기를 읽는 이유] 2026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병근 신부) 영흥 성당

병근병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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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미사에서 욥기를 읽는 이유] 2026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병근 신부) 영흥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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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근병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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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장례 미사에서 욥기를 읽을까요?(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10월 교황님의 기도 지향 https://blog.naver.com/daumez/2244280... 성녀가 겪은 신앙의 밤 ​ 1896년 성목요일 밤, 데레사는 처음으로 피를 토한다. 결핵의 첫 징후였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랑이신 주님께서 곧 자신을 부르시리라는 표지로 여기며 기쁨에 젖었다. ​ 그런데 며칠 뒤 부활 시기가 시작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둠이 찾아왔다. 데레사는 훗날 이렇게 적는다. "가장 기쁜 부활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제 영혼이 가장 짙은 어둠에 잠기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토록 감미롭던 하늘에 대한 생각이 이제는 싸움과 고통이 되었습니다." ​ 이 어둠은 선종할 때까지 약 1년 반 동안 이어진다. 몸은 결핵으로 무너져 갔고, 영혼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밤을 지났다. ​ 데레사는 이 시간을 1897년 6월, 병상에서 원장 마리 드 곤자그 수녀에게 쓴 마지막 원고에 기록했다. 그녀는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목소리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고백한다. "앞으로 가라, 앞으로 가라. 죽음을 기뻐하라. 죽음은 네가 바라는 것을 주지 않고, 더 깊은 밤, 허무의 밤을 줄 것이다." 예전에는 얇은 베일 하나 너머에 있는 것 같던 하늘이, 이제는 "하늘까지 솟아올라 별빛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야기하면 하느님을 모독하게 될까 두렵다며 말을 아낀다. ​ 이 시련 속에서 데레사는 하나의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그때까지 그녀는 하느님을 정말로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그들의 어둠을 자신의 어둠으로 겪는다. 그리고 그들을 "나의 형제들"이라 부르며 이렇게 기도한다. "오 예수님, 그들이 더럽힌 식탁을 당신을 사랑하는 한 영혼이 정화해야 한다면, 당신께서 저를 빛나는 나라로 이끌어 주실 때까지 저는 기꺼이 그 식탁에서 홀로 시련의 빵을 먹겠습니다." ​ 그녀는 이 어둠과 논쟁하지 않았다. 유혹이 올 때마다 예수님께로 달려가 "저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평생 한 것보다 더 많은 신앙 행위를 했습니다." 그녀는 사도신경을 자신의 피로 써서 복음서 사이에 끼워 가슴에 품고 다녔다. 하늘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를 쓸 때조차 아무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저는 그저 제가 믿고 싶은 것을 노래할 뿐입니다." ​ 1897년 7월 병실로 옮긴 뒤, 언니들은 데레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을 받아 적었다. 이 기록은 훗날 『마지막 대화』로 묶인다. 고통은 날마다 깊어졌지만 그녀는 이렇게 쓴다.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던 날 저녁, 십자가를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신뢰」(C'est la confiance)에서 이 시련을 이렇게 풀이한다. 데레사가 겪은 짙은 어둠은 무신론과 신앙 거부의 어둠이었다. 그녀는 세상 죄의 어둠을 모두 짊어지신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 어둠 밑바닥에 있는 절망과 공허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앉으신 예수님처럼, 무신론자들의 자매가 되어 그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 ​ 성녀의 이 시간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를 건넨다. 성인들도 언제나 하느님을 느끼며 산 것은 아니다. 교회가 '사랑의 학자'로 모시는 이 젊은 수녀는 생의 마지막을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밤 속에서 보냈다. 기도가 메마르고, 하느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고, 하늘이 닫혀 버린 것 같은 날을 지나는 이들에게 데레사는 말없이 곁에 앉는다. 느끼지 못해도 믿을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고. ​ 그녀는 믿지 못하는 이들을 심판하지 않았다. 그들의 식탁에 함께 앉아 그들의 빵을 먹었다. 오늘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이들, 교회를 떠난 이들, 절망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재판관이 아니라 형제와 자매로 그들 곁에 앉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그들을 대신해 "저는 믿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 가르멜 담장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이 수녀가 선교의 수호성인이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https://blog.naver.com/daumez/2244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