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전 이런 바둑을 뒀다구??? "토혈지국" 바둑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비극적인 바둑 1835년 7월19일~27일 (혼인보가문)죠와VS 인테쓰(이노우에가문) #죠와의3묘수
이현욱바둑TV[프로바둑9단]
0:00 / 0:00
200년전 이런 바둑을 뒀다구??? "토혈지국" 바둑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비극적인 바둑 1835년 7월19일~27일 (혼인보가문)죠와VS 인테쓰(이노우에가문) #죠와의3묘수
36 788 просмотров · 8 ч назад
이현욱바둑TV[프로바둑9단]
98,4 тыс. подписчиков
36 788 просмотров · 8 ч назад
1828년, 새로운 명인을 뽑기 위해 다시 각 가문의 경쟁이 시작된다. 경쟁자는 이노우에 11대 가주 인세키(幻庵因碩, 1798~1859)와 혼인보 12대 장문인 죠와, 그리고 야쓰이 가문의 가주 지도쿠(安井知得, 1776~1838)이다. 인세키는 떠오르는 명인 후보로 8단이 되기까지 죠와에게 34승 28패를 거두며 전적에서 앞서나가고 있었고, 죠와는 지도쿠도 버거운 마당에 인세키까지 상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하야시 가문의 가주 겐비(林元美, 1778~1861)와의 협력과 더불어 인세키에게는 '내가 명인이 되면 6년 후에 너에게 명인을 주고 물러나겠다.'는 비밀약속과 함께 명인위에 오르는 동의를 얻어 마침내 명인이 되는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막상 명인이 된 이후로 죠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2] 인세키의 도전도 거부한다. 당시 명인은 자신이 두는 대국을 마음대로 중단하거나 아예 도전조차 받지 않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 앞서 한 약속에서 인세키에게 불리한 점이[3] 작용하여 인세키는 죠와에게서 명인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인 대신 다른 사람을 도전하게 하여 대신 명인위를 얻고자 했다. 자신보다 단수가 낮은 인물이 현 명인을 이기면 다시 자신이 도전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 그래서 어찌저찌 이노우에가와 죠와의 대국이 성사되고 거기서 자신을 정선으로 4승을 거둔 수제자 인테쓰를 죠와의 상대로 내보낸다.
출처:토혈국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