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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나라 조선이 무당에게 "세금"을 걷은 진짜 이유**

이야기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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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나라 조선이 무당에게 "세금"을 걷은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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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나라의 뿌리로 삼은 조선은 무당의 굿을 «바르지 않은 제사(음사)» 라며 도성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쫓아낸 무당에게서, 나라는 한 사람 앞에 무명 한 필씩 세금을 받아 갔습니다. 1415년 태종 때 종이돈(저화)으로 걷기 시작해, 1895년 갑오개혁 때에야 없어진 세금입니다. 이 영상은 한여름 새벽, 도성 성문 밖 무녀촌에서 열병 앓는 집으로 가는 무녀 한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나라와 왕실의 굿을 맡던 관청 성수청과 1426년 사간원의 반대, 1472년 성종 때의 무당 단속 규칙과 «도성 안 무당을 잡지 않은 관원은 벼슬에서 물러나게 한다» 는 법, 1510년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 쫓아낼 수 없어 세금을 매긴 미봉책이 1746년 『속대전』의 법 조항이 되기까지, 무명 한 필(세 냥 반) · 다섯 냥 · 잡비까지 얹어 여덟 냥을 받은 충청도 결성현, 그리고 무당 세금을 두고 갈린 어숙권의 『패관잡기』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짚어 봅니다. 역병이 돌면 나라의 전염병 병원 활인서에서 보수 없이 병자를 돌보고, 그 병원 살림에 세금을 댄 무녀들, 1882년 임오군란 때 피란한 왕비 곁에 있다가 «진령군» 이라는 칭호를 받은 무녀, 1925년 남산에서 인왕산으로 밀려난 국사당, 마지막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미신 타파» 로 헐린 서낭당과 멈춘 마을굿으로 내려옵니다. 무속을 믿으라거나 믿지 말라고 말하는 영상이 아닙니다. 조선이 무당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 아래 살던 사람들의 기록을 옮깁니다. 본 영상의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AI 재현 이미지이며, 역사 기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무당 억압책과 무세 징수의 양면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속» · «국무당» 서울역사박물관 『한양의 여성 공간』 (우리문화신문 기사 인용) 서울신문 칼럼 (진령군) 국가유산청 «인왕산 국사당» · 위키백과 «미신타파운동» ▶ 타임라인 0:00 무당을 쫓아내고 세금은 받은 나라 1:29 궁궐 곁의 나라 무당 — 성수청 2:55 도성 밖으로 — 성종의 규칙과 성균관 유생의 상소 4:35 1415년 태종, 무당에게 세금을 매기다 5:58 무명 한 필에서 여덟 냥까지 — 결성현의 세금 장부 7:28 역병이 돌면 — 활인서 옆 무녀촌 9:42 임오군란과 «진령군» 이라는 칭호 10:50 1895년 세금이 사라진 뒤 — 남산 국사당 11:54 1970년대 마을굿이 멈춘 날 #조선시대 #한국사 #무당 #조선생활사 #활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