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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끝내 말하지 않은 다섯 글자 [ 한글날 특집 2부 ]

인류 문명의 시스템 | 아키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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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끝내 말하지 않은 다섯 글자 [ 한글날 특집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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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이 끝내 말하지 않은 다섯 글자 — 집현전이 둘로 갈린 닷새 [SCRIPTA SC3E1] 한글날 특집 2부 · SCRIPTA ▶ 1부 — 우리가 가장 오래 쓴 글자는 한글이 아닙니다:    • 한자로 적은 우리말 [ 한글날 특집 1부 ]   ▶ 문자의 역사 정주행(재생목록):    • 문자의 역사 · SCRIPTA   ═══════════════════════════════════════════════ 조선왕조실록이 한글 창제를 기록한 분량은 57글자였습니다. 날짜도 없습니다. 「이달에」라고만 적혀 있죠. 누구와 의논했는지, 언제 시작했는지도 한 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57글자 안에, 오늘까지 풀리지 않은 다섯 글자가 있습니다. 「其字倣古篆」 — 그 글자는 옛 전서를 본떴다. 옛 전서가 무엇인지는 실록도, 세종도 끝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 뒤, 집현전이 둘로 갈라집니다. 한쪽은 새 글자로 일을 받고, 다른 쪽은 그만두라는 상소를 올립니다. 그 상소를 원문으로 읽으면, 우리가 아는 최만리와 좀 다른 사람이 나옵니다. 한글날 특집 네 편 중 두 번째 — 한글이 나온 뒤 두 달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화에서 다루는 것 · 실록의 창제 기사 전문 57글자 — 화면 하나에 다 들어간다 · 「其字倣古篆」, 577년째 비어 있는 다섯 글자 · 상소 나흘 전 — 세종이 최항·박팽년·신숙주에게 시킨 일 · 새 글자가 처음 맡은 일은 우리말이 아니라 한자 소리 적기였다 · 「집현전이 반대했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 · 최만리 상소 여섯 조목 — 사대 · 오랑캐 · 이두 · 재판 · 서두름 · 세자 · 넷째 조목이 이 상소의 핵심이다 — 「형옥의 공평은 옥리에 달렸다」 · 반대하는 쪽 문장 안에 적혀 있던 것 — 이미 인쇄 준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 눈이 아파 청주 초수로 떠나면서도 세종이 줄이지 않은 한 가지 · 세종의 첫 반격은 최만리가 칭찬한 그 이두였다 · 「그대가 운서를 아느냐」 — 이 논쟁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 · 세종이 정말 화를 낸 상대는 최만리가 아니었다 · 하옥과 석방 — 조선 최대의 문자 논쟁은 닷새로 끝났다 · 해례본과 언해본 — 우리가 외운 「나랏말싸미」는 어느 책인가 · 그 해례본 실물이 1940년까지 세상에 없었다 · 반포 석 달 뒤, 훈민정음이 관리를 뽑는 시험 과목이 된다 · 정인지 서문은 빈칸을 메우기는커녕 더 키웠다 · 가림토가 먼저였다는 이야기 — 15세기 기록에는 없다 🔗 이어 보기 · 이 편은 「한글이 나온 뒤 두 달」입니다. 그 앞의 1000년,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던 시대는 1부에서 봤습니다. 🖼 영상에 쓴 실물 사진 훈민정음 해례본(1946 조선어학회 영인) — 원작 조선 정부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 위키미디어 공용 · 퍼블릭 도메인 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Hunminjeongeum_Haerye 훈민정음 해례(조선어학회편, 1946 영인) — 국립한글박물관 (한구 253)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600025300000 월인석보 권1(희방사본 = 훈민정음 언해본) — 국립한글박물관 (한구 1061)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600106100000 이문대사(吏文大師) — 국립중앙박물관 (구5554)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600555400000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세종실록 권18)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 국가유산청 · 공공누리 제1유형 www.khs.go.kr/unisearch/images/national_treasure/2594042.jpg 삼강행실도 — 국립중앙박물관 (구 9142)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2400914200000 삼강행실도언해(목판본 · 1730) — 국립한글박물관 (한구 294) · 공공누리 제1유형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600029400000 고금운회거요 권1 — 저자 황공소(黃公紹)·웅충(熊忠, 원) · 스캔 CADAL(중국 저장대학) · 위키미디어 공용 · 퍼블릭 도메인 commons.wikimedia.org/wiki/File:CADAL06048649_%E5%8F%A4%E4%BB%8A%E9%9F%BB%E6%9C%83%E8%88%89%E8%A6%81%C2%B7%E5%8D%B7%E4%B8%80.djvu 본 저작물은 위 기관들이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으로 개방한 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위 사진들은 16:9 화면에 맞춰 잘라냈고 화면에 설명 자막을 얹었습니다. 📌 이미지 안내 유물 사진은 위 🖼 목록의 실제 소장품 사진입니다. 그 밖의 인물·장면 이미지는 AI로 생성한 연출 자료이고, 도표는 데이터 시각화 자료입니다. 연출 자료는 학술적으로 검증된 원본 자료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검증된 자료는 아래 스크립타 아카이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참고 문헌 — 이 영상의 인용은 전부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가져왔습니다 세종실록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 창제 기사 전문 57글자 세종실록 1444년 1월 27일 — 안질을 치료하고자 청주 초수에 행궁을 세우게 하다 세종실록 1444년 2월 16일 「집현전 교리 최항·부교리 박팽년 등에게 언문으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다」 세종실록 1444년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 상소 원문 2429자 · 여섯 조목 세종실록 1444년 2월 21일 — 김문에게 장 100대를 속바치게 하고 정창손을 파직하다 세종실록 1445년 2월 11일 「유를 수양 대군으로 고치고…」 — 진양대군 → 수양대군 세종실록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 —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 세종실록 1446년 12월 26일 「이과와 이전의 취재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였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 정인지 서문 — 「象形而字倣古篆」 · 「正音之作 無所祖述」 원문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 「其字倣古篆」의 「옛 전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정설이 없습니다. 이 영상은 어느 해석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 파스파 문자 기원설은 자료를 놓고 학자들이 주고받는 학설이고, 가림토는 후대에 지어진 문서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영상은 둘을 같은 자리에 놓지 않습니다. ※ 세종이 청주 초수로 떠난 것은 상소(2월 20일) 뒤인 2월 28일입니다. 이 영상은 상소 시점에 세종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전제로 이야기합니다. ※ 운회 번역을 감독한 「진양대군」은 뒷날의 수양대군, 곧 세조입니다. 1444년 2월 기사에는 진양대군(晉陽大君)으로 적혀 있고, 이듬해 1445년 2월 11일 수양대군으로 이름을 고쳤습니다(세종실록). 영상은 당시 기록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 SCRIPTA — 인류의 글자 아카이브 한글: https://scripta.archilabs.kr/ko/scrip... 한자: https://scripta.archilabs.kr/ko/scrip... 문자 목록: https://scripta.archilabs.kr/ko/catalog 메인: https://scripta.archilabs.kr 인류 문명의 시스템 — 문자 · 언어 · 화폐 · 단위 · 도구 문명의 기록, 아키랩스 @Archilabs_kr #한글날 #훈민정음 #한글 #세종대왕 #최만리 #집현전 #정인지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한국사 #문자의역사 #SCRIPTA #아키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