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 부처님이 깨달은 우주의 법칙. 불교의 핵심 진리. 상호의존성. 부분과 전체. 이름과 명칭.
Страдание — это иллюзи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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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 부처님이 깨달은 우주의 법칙. 불교의 핵심 진리. 상호의존성. 부분과 전체. 이름과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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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이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다.
연기법(緣起法)이란 우주의 법칙, 즉 이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무한 대자유인 해탈의 성취 방법 역시 포함되어져 있다.
이제 연기법(緣起法)을 세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겠다.
첫째, 상호의존성으로써의 연기(緣起)
둘째, 부분과 전체로써의 연기(緣起)
셋째, 이름, 명칭으로써의 연기(緣起)
1. 상호의존성으로써의 연기
연기란 (緣起)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란 원인과 조건이 서로 의존하여 뭔가가 생겨남을 말하고
그 생겨나는 것이 법이기에 연기법(緣起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법(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을 말한다.
모든 것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창조주나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고
원인 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다.
당신의 몸을 살펴보면 위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당신의 몸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창조주나 조물주가 만든 것도 아니며
원인 없이 덜커덕 생겨난 것도 아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부모에 의존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다.
당신의 몸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당신의 부모에 의해 생겨났으니
이것이 바로 상호의존성으로써의 연기(緣起)이다.
물론 당신의 몸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오히려 자신과 이 세상 모든 존재와 사물들을 독립적인 실체라고 여긴다.
즉 스스로 홀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줄 아는 것이다.
당신 역시 자신 안에 하나의 영혼 또는 독립적인 실체로써의 "나"가 있는 줄로 여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기법(緣起法)을 모르는 것이다.
연기법(緣起法) 즉 상호의존성과 독립적인 실체는 서로 정반대 개념이다.
당신은 자신이 홀로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줄 알지만, 천만에!!!
당신은 절대 홀로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당장 공기가 없으면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공기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밥을 안먹으면 며칠내 죽는다.
당신은 음식에 의존하고 있다.
당신의 월급도 마찬가지다.
당신 스스로 버는게 아니다.
사장이 당신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홀로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홀로 자신만의 힘으로 뭘하는 것도 역시 아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자신 안에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존재하는 "나" 또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 또는 "영혼"이란 이 개념을 잘 알아야 한다.
"나" 또는 "영혼"이란 그 무엇의 도움없이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개체성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걸 철저히 부정하셨고
그것이 바로 불교의 무아(無我)의 진리이다.
바로 이 연기법(緣起法)에서 무아(無我)사상이 나온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홀로 독립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댓글로 그걸 알려주시기 바란다.
2. 부분과 전체로써의 연기(緣起)
부분은 전체에 의지하고, 전체는 부분에 의지한다.
이것이 바로 부분과 전체로써의 연기(緣起)이며
전체를 부분 부분으로 해체해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를 그냥 보면 하나의 단일한 실체처럼 보여지지만
그걸 해체해서 부품을 모두 분리시켜 놓으면 자동차라는 실체는 본래 없음을 알게 된다.
자동차라는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당신의 몸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남자에게 반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반한다.
왜냐면 몸뚱아리를 단일한 하나의 실체라고 여겨서 그렇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부정관 수행을 할 때 사람 몸을 부분부분으로 나눠서 보라고 가르치셨다.
당신의 몸도,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도 단일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즉 당신의 몸은 수많은 부분 부분들이 결합되어져 있다.
뼈와 살, 내장, 심장, 폐, 간, 털, 피부 등등 수많은 것들이 결합되어져 있다.
그러니 당신의 몸에 뭔 실체가 있겠는가?
당신의 몸엔 영원성이란게 본래 없다.
그래서 늙어가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건 당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당신의 마음도 언제나 다른 것에 의존하여 작동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생각은 모두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한덩어리같지만, 수없이 많은 부분부분들이 결합되어져 있다.
몸도 마음도 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몸과 마음에 뭔 실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의 몸도 매순간 변하고, 당신의 마음도 역시 매순간 변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독립적인 실체가 아님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부분 부분으로 해체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분과 전체로써의 연기(緣起)이다.
3. 이름, 명칭으로써의 연기(緣起)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했고
또한 현재도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라질 때도 역시 다른 것에 영향을 받아 즉 상호의존적인 힘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다.
생주멸, 모두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언제나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으니 그 자체엔 내재된 영원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즉 실체가 없다.
바로 이것이 무아(無我)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실체가 없어서 텅 비어 있기에 공(空)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우주, 삼라만상 그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요, 허상이요, 허구이다.
그러나 바로 그 허구에 모두 이름을 붙여놓고 중생들은 서로 호칭하며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름, 명칭으로써의 연기(緣起)이다.
금강경에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나온다.
"단지 이름일 뿐이니라"
부처님의 이 말씀이 바로 이름, 명칭으로써의 연기(緣起)이다.
연기법(緣起法)에서 이 부분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
실체없이 굴러가는 기계에 "자동차"라는 이름, 명칭을 붙여놓았다.
실체없이 여러가지 재료들로 지은 거주처를 "집"이라는 이름, 명칭을 붙여놓았다.
실체없이 뼈와 살 등으로 이루어진 지수화풍 4대를 "몸"이라는 이름, 명칭을 붙여놓았다.
또한 사람 각자에게는 이름이 있다.
이렇게 중생들은 실체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름과 명칭을 붙여놓고 서로 호칭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즉 중생들은 바로 이 말과 언어에 속고 사는 것이다.
단어나 호칭, 명칭만 들었을 때는 마치 그것이 독립적인 실체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 명칭으로써의 연기(緣起)를 가장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언어 즉 호칭, 명칭이란 실체없는 대상에 단지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 호칭, 명칭 따위에도 뭔 실체가 있겠는가?
대상에도 실체가 없고
대상에 붙여놓은 이름, 호칭에도 역시 실체가 없다.
이상이 바로 이름, 명칭으로써의 연기(緣起)이다.
연기법(緣起法)을 알아야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홀로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여기겠으나
당신은 언제나 다른 것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당신이 먹는 밥, 즉 쌀도 남들이 농사짓고 수확해서 당신의 입에 오기까지 수많은 존재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홀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게 아니다.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위대한 이 연기법(緣起法)의 진리는 정말로 심오한 것이다.
바로 이 연기법(緣起法)에는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그 방법도 또한 명확하게 담겨져 있다.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최고, 최상이 바로 이 연기법(緣起法)이다.
그래서 티벳불교의 쫑까파 대사께서 이 연기법(緣起法)을 찬탄하는 "연기찬탄문"을 지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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