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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왜 노비 출신 궁녀에게 막내아들을 맡겼을까?

기록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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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왜 노비 출신 궁녀에게 막내아들을 맡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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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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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곳간에서 항아리를 나르던 열세 살 여종이 있었습니다. 몇 해 뒤 왕비는 자기가 낳은 막내 왕자를 이 여인의 품에 맡겼고, 세종은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궁인의 계보에는 본래 귀천이 없었다." 『세종실록』에 남은 그 대화에서 출발해,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가 노비에서 정1품 빈에 오르고 계유정난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까지를 따라갑니다. [기록 출처] · 세종실록 84권, 세종 21년(1439) 1월 27일 — 소의 김씨를 귀인으로 삼다 ·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1450) 2월 17일 — 임금이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승하 · 문종실록 1권, 문종 즉위년(1450) 3월 16일 — 담양군을 위한 불사 비용 · 단종실록 3권, 단종 즉위년(1452) 9월 12일 — 신빈이 머리를 기르라는 청을 따르지 않다 · 세조실록 13권, 세조 4년(1458) 7월 12일 — 강원도 관찰사에게 신빈에게 군자미를 주라 명하다 ※ 신빈 김씨의 출신, 귀인 승격, 출가와 환속 거절, 세조대의 대우는 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궁녀들의 반응, 왕비가 아기를 건네는 장면 등 일부 장면과 묘사는 이야기를 위해 각색했습니다. 신빈 칭호를 받은 해와 혜빈 양씨 관련 세부 날짜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합니다. 여러분이라면 머리를 기르라는 허락을 받아들이셨을까요? 댓글로 들려주세요. #기록의이면 #세종 #신빈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