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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여심 이영진 노래 안언자 작사 김현우 작곡 (1980 계은숙)7080 삼태기 메들리 이영진LIVE카페(서울특별시영등포구디지털로407(대림동)K-ARIRANG李咏陳歌謠博物館

삼태기 이영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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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여심 이영진 노래 안언자 작사 김현우 작곡 (1980 계은숙)7080 삼태기 메들리 이영진LIVE카페(서울특별시영등포구디지털로407(대림동)K-ARIRANG李咏陳歌謠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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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기 이영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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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여심 待っている女心 (1980 계은숙) 이영진 노래 안언자 작사 김현우 작곡 내 마음 왜로울땐 눈을 감아요 자꾸만 떠오르는 그대 생각에 가슴에 느껴지는 사랑에 숨결 멀리서 아득하게 전해 오내요 사랑이 끝났을 때에 남겨진 이야기는 시들은 꽃잎처럼~~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 하겠지 내마음 서러울땐 하늘을 봐요 흐르는 구름 위에 마음 띄우며 내곁에 와달라고 기원하면서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 사랑이 끝났을 때에 남겨진 이야기는 시들은 꽃잎처럼~~ 흐르는 세월이 아쉬워 하겠지 내마음 서러울땐 하늘을 봐요 흐르는 구름 위에 마음 띄우며 내곁에 와달라고 기원하면서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 桂銀淑 1961년 7월 28일 충청남도 서산시 출생 1979년 노래 '노래하며 춤추며'데뷔 (안언자 작사 김현우 작곡) 학력 서울답십리초등학교 (졸업) 성수여자중학교 (졸업) 천호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1.개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가수. 1985년 일본에 데뷔한 원조 한류 스타로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와 성량, 뛰어난 감정 표현과 미모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의 최전성기때의 위상은 한국에서 패티김의 최전성기때라고 보면 상상이 될 것이다. 일본으로 진출한 한국 가수는 많지만 계은숙은 케이팝이 전 세계를 휩쓸기 전 까지는 명실공히 탑 오브탑 이었다 정규 음반 1978년 배 타고 간 님 / 총각님 (유니버설레코드) 1980년 노래하며 춤추며 / 기다리는 여심 (서라벌레코드) 1981년 보고픈 걸 어떡해 / 사랑이면 다인 것을 (서라벌레코드) 1981년 다정한 눈빛으로 / 나에겐 당신밖에 (태양음향) 1982년 다정한 눈빛으로 / 연정 (태양음향) 1986년 바람은 왜 불었나요 / 비의 초상 (오아시스) 초년의 삶 계은숙은 1961년 7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부친과 헤어진 후 친정으로 돌아와서야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모친 송종열 씨는 서울 명동의 증권가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자랐다 답십리초등학교와 성수여자중학교 시절엔 평범했고 사이클 선수를 했던 고교시절엔 다른 팀 선수와 싸움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학을 했고 최종적으로는 천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계은숙은 중학교 때부터 계(桂) 씨 종친회를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훗날 결국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이미 아버지에겐 새로운 가정도 있었고 어머니와도 서먹서먹하여 곧 인연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 데뷔와 한국에서의 활동 계은숙은 1977년 "럭키샴푸"의 CF 모델로서 연예계에 데뷔했고, 2년간 모델 활동을 했다. 1978년에 "유니버설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1980년 서라벌레코드에서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을 발표하면서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나에겐 당신밖에], [다정한 눈빛으로]와 같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일본에서의 데뷔와 활동 일본에 살던 지인이 1981년부터 3년동안 일본 데뷔 및 일본 활동을 제의 했었으나, 당시에는 고사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덕화, 김청이 진행하던 MBC 생방송 [쇼 2000] 100회 특집에서 현숙의 [정말로]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으나 한 차례의 파혼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심정 때문에 방송 펑크를 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방송 출연정지를 먹고, 한국에서 다시 가수 생활 할 자신이 없어서, 일본에 사는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1984년 일본행을 택하였고, 지인의 추천으로 일본의 유명 작곡가인 하마 케이스케(浜圭介)를 소개 받는다. 1년 동안 하마 케이스케를 사사한 계은숙은 1985년에 [大阪暮色](오사카 보쇼쿠)로 데뷔하였다 이후로 계은숙은 [すずめの涙](스즈메노 나미다), [夢おんな](유메 온나), [酔いどれて](요이도레테),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 [ベサメムーチョ](베사메무초) 등의 곡들을 차례로 발매해 히트시켰고, 각종 음악상들을 휩쓸었다. 1988년 계은숙은 [夢おんな](유메 온나)로 "제21회 일본유선대상"(日本有線大賞)의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같은 해 그녀는 NHK의 연말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에 최초로 등장했고, 이후 1994년까지 7년 연속 출연했다. 또한 "일본 레코드 대상"(日本レコード大賞)의 단골손님이 되면서, 1990년에는 앨범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로 "제32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앨범 대상을 수상했다 계은숙은 고백하기를, 데뷔 전 당시 소속사(제일 프로덕션) 사장에게 "엔카로 가게 된다면 싱글보다도 앨범이 팔릴 정도로 생명력이 긴 아티스트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는데, 엔카 가수로는 드물게도 앨범이 팔리는 가수가 되면서, "엔카는 [싱글은 팔려도] 앨범은 팔리지 않는다"는 기존의 징크스를 부쉈다. 1987년에 발매된 [北空港](키타쿠우코우)는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와 듀엣으로 부른 곡으로, 일본 엔카의 여러 듀엣 곡들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다. 이 곡은 현재도 카라오케 가게에서 사랑을 받아, 카라오케 랭킹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들고 있다 1992년 2월 22일에 계은숙은 3살 연상의 사업가와 조용기 목사의 주례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결혼했다. 이 부부는 1998년에 이혼한다 소속사 레코드회사 소속이었던 가수 테레사 텐(テレサ・テン, Teresa Teng: 鄧麗君, 덩리쥔)에게 자극을 받아, 자신의 이름 표기를 한자에서 카타카나 표기인 "케이 운수쿠"(ケイ・ウンスク: 계은숙)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7월 발매된 [『Yes』と答えて](예스토 고타에테)부터 다시 한자 표기인 "桂銀淑"을 사용했다 부채로 인한 재판 소속사인 "타이거 엔터프라이즈"와 차입금 문제로 트러블이 발생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이 회사와 계약도 해지되었고, 2억 5,500만 엔에 달하는 지급금 반환소송도 진행되고 있었던 것 그녀는 남편과의 이혼, 부채에 따른 재판, 갱년기 장애와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6년에서야 재판에서 화해가 성립되어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재개했다. 그녀는 "도시바-EMI" 시절의 히트곡들을 새롭게 부르고 3곡의 신곡을 추가해서, [계은숙 : 2006 뉴 베스트](桂銀淑 2006 NEW BEST) 앨범을 발표했다. 복귀와 각성제 소지혐의 재판 계은숙은 2007년 11월 26일 "관동지방 후생국 마약단속부"(関東信越厚生局麻薬取締部)에 의해 돌연 "각성제 단속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었다 "도쿄 지방법원"은 12월 21일 즉결재판을 통해, 그녀의 각성제단속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선고 이후 귀국했다. 2.가족사 어머니는 본부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서울에 이미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속여 허위로 결혼식까지 올리며 계은숙을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은숙을 임신한 상태에서 집을 나갔고, 그녀는 그동안 아버지가 일찍 사망했다고 알고 자랐다. 사춘기 시절 어머니의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듣게 되자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 어머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한참을 방황했다 이후 은사를 찾아가 '수안 계씨 종친회'를 알게 돼 편지를 쓰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을 성사시켰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어머니에게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후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었다. 6.25 전쟁 때 가족을 잃고 고아로 자라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오직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6.25 피난 이후 어머니와 연을 맺기 전에 이미 본부인이 있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어머니는 당당하게 결혼했고 결혼 이후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며 두 딸을 데리고 고향인 충청남도 서산시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10여년간 치매를 앓다 2016년 사망했다 3.활동 아역 출신으로 가수 활동을 하다 진로를 바꿔서 광고모델로 전업했고 이후 가수로 복귀했다 그러다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浜 圭介)를 만나 일본에서 1985년 「오사카 황혼(大阪暮色)」로 데뷔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꽃피우게 된다. 일본에서는 엔카를 주로 불렀고 인기정상에 우뚝섰다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던 2000년에는 SBS 드라마 덕이의 주제가를 불렀다 'すずめの淚'[4] 2024년 6월 11일 MBN 한일톱텐쇼 3회 계은숙쇼에 출연하며 10년여 만에 한국 방송에 복귀했다. 일본의 톱가수도 자주 못나가는 홍백가합전에 7회나 출장했던 이야기와 일본 데뷔 초기에 일본어를 단 세 마디밖에 못해서 울었던 스토리, 식당에서 식사하던 도중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대면하여 악수하던 썰이 전파를 탔다 그렇게 케이블로라도 방송 복귀가 되나 싶다가도 2026년 현재까지 활동이 없고 대신 2025년부터 일본에서 최소한의 조치는 풀렸는지 디너쇼로 활동하며 2026년에도 디너쇼를 열었다 4.대표곡 노래하며 춤추며 (1980) (1980년 9월 20일 KBS 100분쇼) 다정한 눈빛으로 (1981) (1982년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6.소속사 문제 교통사고 후유증과 소속사와의 반환금 소송, 막대한 세금 추징 같은 악재가 겹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7.1. 사기 및 마약 2007년 각성제 소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비자 연장이 거부되어 귀국하게 되었다. 계은숙 본인은 두통 때문에 소속사로부터 약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각성제였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2014년 포르쉐 파나메라를 리스 계약을 체결하고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사기혐의로 고소당했다. 2015년 6월 25일엔 세 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전격구속 되었고, 결국 2016년 8월 10일 대법원에서 마약 복용 및 위의 포르쉐 리스와 추가의 사기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2017년 5월엔 사기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결국 모든 지상파 방송국에서 출연정지가 되었다. 에이미에 이어 모든 지상파의 출연정지 명단에 오른 2번째 여자 연예인이 됐으나 현재는 해제됐다 8.여담 1992년에 결혼해서 1997년 이혼했고 자녀는 없다. [4] 후에 김현정이 '아파요'라는 곡으로 리메이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