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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 | 귀혼: 무혼록 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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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 | 귀혼: 무혼록 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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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황천의 문 천귀사 위로 하늘이 갈라졌다. 벌어진 틈 사이로 검은 기운이 흘러내렸다. 처마 끝에서 흔들리던 나뭇잎이 멎고, 돌마당을 쓸던 바람이 끊겼다. 이윽고 하늘의 틈이 닫혔을 때, 별원에는 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서 있었다. 양악평. 사묵성의 시선이 흑과의 날을 지나 얼굴에 닿았다. 관모 아래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려 입을 열자, 그 낯선 눈보다 익히 알던 얼굴이 먼저 마음에 걸렸다. “양악평. 아직 돌아올 수 있다.” 흑과를 쥔 손가락이 움직였다. 양악평은 자루를 안쪽으로 당겨 잡으며 사묵성을 보았다. “그 자비가… 사형을 죽일 것이오.” 말끝이 가라앉기도 전에 사묵성이 땅을 박찼다. 뒤에 선 세 사람과 거리를 좁히며 비스듬히 몸을 날렸다. 양악평의 흑과가 그 움직임을 따라 돌아갔다. 거대한 날 너머에 사묵성이 걸렸다. “천마멸혼참!” 검붉은 기운이 날에서 떨어져 나왔다. 압축된 참격이 돌마당 위를 낮게 가르며 네 사람에게 쏟아졌다. 소실매가 사묵성 앞으로 들어섰다. 두 손으로 받친 금장의 끝이 공격을 향했다. “금강연화벽!” 지면에서 솟은 금빛 방벽에 참격이 들이박혔다. 소실매의 팔꿈치가 밀렸다. 발바닥 아래로 전해진 진동이 무릎까지 치고 올라왔으나, 그녀는 벌린 두 발을 좁히지 않았다. 금장을 누르는 손에 힘이 더해졌다. 금빛 벽을 따라 파문이 번지며 검붉은 참격의 끝을 위로 밀어 올렸다. 궤적이 꺾였다. 지붕 위로 치솟은 참격이 높은 하늘에서 터졌다. 뒤늦게 내려온 굉음에 기와가 떨렸다. 폭염 속에서 뿔 달린 얼굴과 움켜쥐는 팔의 형상이 한순간 엉겼다가 찢어졌다. 소실매는 폭발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지면에 잇닿은 방벽을 붙든 채, 그 너머로 파고드는 완안승의 등을 보고 있었다. “증호조!” 황금 조가 양악평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흑과가 내려와 세 갈래 날을 걷어 냈다. 금속을 긁는 소리가 길게 끌렸다. 완안승은 오른팔이 밀리는 힘을 허리로 받아 몸을 틀었다. 되돌아온 조가 이번에는 다른 높이에서 비껴 들었다. 두 번째 충돌이 손목을 울렸다. 완안승은 이를 악물고 보폭을 줄였다. 세 번째 공격은 더 짧았다. 흑과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거리를 없애려는 일격이었다. 그러나 양악평의 손이 자루를 틀어 그 선마저 막아 세웠다. 반격은 맞닿은 쇳소리가 채 가시기 전에 들어왔다. 완안승의 상체가 꺾였다. 땅을 딛던 발이 들리고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돌바닥에 어깨가 부딪친 뒤에야 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맨 왼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구르는 몸을 세우려 했다. 생체 오른손 손등의 황금 조는 여전히 붙어 있었다. 양악평은 더 쫓지 않았다. 시야에서 사묵성이 사라져 있었다. 세 번의 공방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그의 얼굴에 빛이 쏟아졌다. 거대한 천수관음이 별원 위에 펼쳐졌다. 겹겹이 벌어진 손 가운데 하나가 뒤집혔다. 손바닥 아래로 양악평만 남아 있었다. “여래신장!” 사묵성의 손이 내리꽂혔다. 빛의 손바닥이 양악평을 덮고 돌마당을 짓눌렀다. 바닥이 움푹 내려앉으며 돌가루가 사방으로 밀려났다. 소실매는 금장을 붙든 채 한쪽 무릎을 짚었다. 뒤편의 하우무는 십장을 세우고 얼굴을 돌려 먼지를 피했다. 완안승은 반격에 쓰러졌던 자리에서 낮게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사묵성이 세 사람 곁에 내려섰다. 먼지가 소매를 스쳐 흘렀다. 그는 손을 내리지 않은 채 타격이 떨어진 곳을 보았다. “해치웠나?” 하우무가 물었다. 십장을 쥔 손은 풀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작은 돌 하나가 굴러 멎었다. 그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먼지 속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우무의 턱이 굳었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흑과의 날이었다. 이어 자루를 붙든 손과, 그 뒤에 버틴 양악평이 보였다. 갑주와 옷에 타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몸을 받친 무기는 기울지 않았다. 양악평이 빈손을 펼쳤다. “황천의 문.” 흑과가 닿은 자리에서 검붉은 선이 돌 틈을 타고 달렸다. 사묵성은 발밑으로 지나가는 빛을 보았다. 선은 마당 한가운데로 모여 거대한 문양을 그렸다. “사묵성! 혼돈의 손으로 황천을 열어 너에게 인도하니, 지금 네 앞에서 사라질지어다!” 땅속에서 무거운 것이 움직였다. 발바닥으로 먼저 느껴진 울림이 뼛속을 타고 올라왔다. 돌바닥이 양쪽으로 벌어져 아래로 가라앉았다. 드러난 어둠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먼지와 돌조각이 문 안으로 쏠렸다. 사슬이 솟구쳤다. 사묵성은 팔을 들어 막았으나 사슬은 팔뚝을 감고 몸 뒤로 돌아 가슴까지 조였다. 소실매가 무릎을 세우는 사이 또 한 갈래가 그녀를 붙잡았다. 완안승에게, 뒤의 하우무에게도 각각의 사슬이 날아들었다. 하우무가 십장을 버팀목 삼아 힘을 주자 발밑의 돌이 긁혀 나갔다. 사묵성은 몸을 낮춰 버텼다. 사슬 너머로 양악평이 보였다. 문 반대편에 선 그에게는 단 한 줄의 사슬도 향하지 않았다. 견인력이 한꺼번에 강해졌다. 디딘 돌이 부서졌다. 네 사람이 차례로 문 가장자리를 넘어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소매와 머리카락이 위로 치솟았다. 발을 뻗어도 닿는 것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마당이 머리 위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사묵성은 함께 떨어지는 얼굴들을 찾았다. 소실매, 완안승, 하우무. 셋 모두 사슬에 묶여 있었다. “대력불도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약지가 아래를 향했다. 세 손가락이 한 번 그어지자 금빛 궤적이 뻗었다. 사람들의 몸에서 떨어진 빈 어둠 세 곳에 작은 불씨가 맺혔다. 불씨가 응축되며 네발의 윤곽을 갖췄다. 사자의 형상을 한 세 마리 수호수가 빛 속에서 몸을 이루자마자 갈라져 날았다. 첫 번째의 앞발이 사묵성을 묶은 사슬을 잘랐다. 다른 한 마리는 소실매의 속박을 끊고 몸을 틀어 하우무에게 향했다. 마지막 수호수가 완안승의 사슬을 끊었을 때, 잘린 고리들이 네 사람 사이로 흩어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힘이 풀렸다. 사묵성이 숨을 들이켰다. 몸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수호수들이 사람들에게서 갈라져 나간 순간, 더 깊은 어둠에서 사슬이 다시 솟았다. 날아가던 첫 수호수의 빛나는 가슴이 꿰뚫렸다. 황금 파편이 흩어졌다. 나머지 둘도 각각의 사슬에 관통당해 무너졌다. 금빛이 사라진 뒤, 사슬 끝들이 세 사람을 지나 한 곳으로 휘었다. 사슬이 다시 뻗어 나온 순간, 사묵성은 그것이 자신에게 오리라는 것을 몸으로 먼저 알았다. 어깨를 감고 가슴을 지나 팔뚝까지 죄어드는 힘이 숨을 밀어냈다. 셋보다 깊이, 더 빠르게 끌려 내려가는 감각 속에서 위쪽의 빛이 급격히 좁아졌다. 소실매가 손을 뻗었다. 손끝과 손끝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보다 둘을 가르는 어둠이 벌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사묵성은 그 손을 보았다. 붙잡으면 함께 끌려 내려온다는 계산보다 앞서, 팔이 먼저 물러났다. 잡지 않았다. “천음섭진.” 떨어지는 몸의 흔들림을 그대로 안은 목소리가 갈라져 나갔다. 하우무의 등 아래, 소실매의 발밑, 완안승의 몸 아래로 금빛 꽃잎이 동시에 벌어졌다. 세 사람의 무게가 꽃잎을 오므리고, 오므린 힘이 되튀는 순간 몸이 위로 튕겨 올랐다. 급격한 방향 전환에 옷자락이 젖혀지고 숨이 턱 막혔다. 사묵성만 그 반동을 받지 못했다. 몸을 감은 사슬이 다시 팽팽해지며 그를 더 깊은 어둠으로 당겼다. 멀어지는 세 사람의 얼굴이 점점 작아졌다. 그 너머 문가에 양악평이 서 있었다. 사묵성이 고개를 들었다. 가슴을 죈 사슬 때문에 숨이 짧았다. 목소리를 내자 바람이 말끝을 위로 잡아끌었다. “양악평이여, 태화노군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기억해 내라!” 양악평은 흑과를 쥔 채 서 있었다. 사묵성은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떨어졌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는데도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너는 내 형제다!” 소실매의 발이 문밖에 닿았다. 떠미는 꽃잎의 힘에 몸이 앞으로 쏠렸다. 양옆으로 하우무와 완안승도 돌마당에 올라섰다. 소실매는 중심을 다 잡기도 전에 몸을 돌려 가장자리에 엎드렸다. “안돼!” 뻗은 손 아래에서 금빛 후광이 작아지고 있었다. 손을 더 내밀어도 닿을 것은 어둠뿐이었다. 양쪽의 거대한 문짝이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묵성이 보이는 틈이 좁아졌다. 돌이 맞물렸다. 소실매의 손바닥 아래로 닫히는 진동이 전해졌다. 손가락을 벌려 바닥을 짚었으나 붙잡을 틈은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려오던 목소리마저 끊긴 뒤에도 그녀는 그 자리를 보고 있었다. * * 작은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은발의 청년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눈꺼풀이 열렸다가 볕에 잠깐 오므라들었다. 오른손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손안에서 구겨진 천이 바스락거렸다. 그는 창가의 한 지점에 시선을 멈췄다. 방은 조용했고, 빛이 닿는 쪽 뺨이 따뜻했다. 손가락의 힘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눈앞의 벽도, 덮고 있는 이불도 낯설었다. 열린 문밖에서 마을의 아침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