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에 100번 나오는 이름, 그런데 아무도 모릅니다 | 이순신 옆을 6년간 지킨 사나이 이억기
역사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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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에 100번 나오는 이름, 그런데 아무도 모릅니다 | 이순신 옆을 6년간 지킨 사나이 이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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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적장도 부하도 아니었습니다. '우수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억기입니다. 활을 쏘고 바둑을 두고 밥을 먹은 기록이 전투 기록보다 많을 만큼 등장하지만, 오늘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조선 2대 임금 정종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열일곱에 무과에 급제하고, 스물한 살에 두만강 국경도시 경흥을 맡았습니다. 함경도 시절 녹둔도 사건으로 목이 날아갈 뻔한 이순신을 변호해 살려낸 사람도 그였습니다. 그리고 1592년, 판옥선 스물다섯 척을 이끌고 합류하며 조선 주력 함대의 규모를 하루아침에 두 배로 만듭니다. 한산도 대첩의 학익진, 부산포 해전, 안골포 봉쇄까지 이순신 곁에는 늘 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선 수군 연합함대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이순신의 전라좌수영과 이억기의 전라우수영이었습니다. 전쟁 7년 동안 삼도의 수군 지휘관들이 전사하고 파직되고 교체되는 사이, 개전부터 전사하는 날까지 6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함대를 지휘한 사람은 이억기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평가는 그를 원균만 못하다고 적었습니다.
1597년 칠천량, 원균은 배를 버리고 달아나고 배설은 열두 척을 이끌고 빠져나갔습니다. 이억기는 어느 쪽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조수정실록은 그의 마지막을 단 네 글자로 적습니다.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서른여섯이었습니다. 시신을 찾지 못해 그의 무덤에는 입던 옷과 갓만 묻혔습니다.
조선 수군 절반을 짊어지고도 옆자리에 섰다는 이유로 지워진 이름, 이억기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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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 난중일기에 백 번 나오는 이름
02:38 열일곱에 무과 급제, 이순신은 서른둘이었다
05:08 녹둔도 사건, 이순신을 처음 구하다
07:24 왜 첫 전투에 나오지 않았을까
08:30 판옥선 스물다섯 척, 함대가 두 배가 되던 날
09:35 한산도, 학이 날개를 펴다
12:58 조선 수군의 절반은 그의 배였다
17:37 그는 원균만 못합니다
19:48 곤장 맞고 나간 함대
21:54 물에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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