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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가 내 삶을 파괴할 때 ㅣ 김학철 교수 ㅣ사무엘상 18장 1-16절 ㅣ2019년 8월 25일 좋은예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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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가 내 삶을 파괴할 때 ㅣ 김학철 교수 ㅣ사무엘상 18장 1-16절 ㅣ2019년 8월 25일 좋은예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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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5일 좋은예배모임 말씀 – 사무엘상 18장 1-16절 1. 다윗이 사울과 이야기를 끝냈다. 그 뒤에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 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2. 사울은 그 날로 다윗을 자기와 함께 머무르게 하고,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3.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4.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 5. 다윗은, 사울이 어떤 임무를 주어서 보내든지, 맡은 일을 잘 해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온 백성은 물론 사울의 신하 들까지도 그 일을 마땅하게 여겼다. 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고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 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 7. 이 때에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8.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 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다. 9.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10. 바로 그 다음 날, 하나님이 보 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 덮치자, 사울은 궁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 다윗은 여 느 날과 같이 수금을 탔다. 그때에 사울은 창을 가지고 있었는데, 11. 그가 갑자기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하면서,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하였다. 12. 주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안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졌다. 13. 그리하여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였다. 다윗은 부대를 이끌고 출전하였 다. 14. 주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그는 항상 이겼다. 15. 다윗이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두니, 사울은 그것을 보고, 다윗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16.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 는 다윗이 늘 앞장 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좋아하였다. 말씀의 풀이 셰익스피어 작품 중 오델로(Othello)는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사랑하며 읽는 작품이고, 또 해 석에 대한 논란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비극(悲劇)이다. 네 명의 인물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다. 먼저 무어인 오델로 장군이 있다. 그는 능력과 인품이 출중하여 백인들 틈에서도 존경과 사 랑을 받았다. 그런 그를 알아보고 피부색 따위를 넘어서 오델로를 남편으로 맞은 공국 원로의 딸 데스데모나가 있다. 정절의 여인 데스데모나는 순전히 오델로만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비극은 오델로의 부하이자 진급에서 누락된 이아고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올라야 할 자 리에 카시오가 올랐다고 생각하고는 원한을 품어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든 오델로와 카시오에게 복수하고자 하였다. 복수는 오델로에게 의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했다. 카시오 는 오델로에게 데스데모나와 부관 카시오가 서로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거짓을 꾸며 댄다. 처 음에 오델로가 그 말을 믿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한 번 뿌려진 의심의 씨앗은 데스데모나가 선 량한 마음에서 카시오에게 베푼 친절을 본 오델로의 마음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비극이 늘 그렇듯 순수한 사랑과 친절은 그만큼의 크기로 불행을 갖고 온다. 이아고는 데스데 모나의 손수건을 훔쳐 카시오에게서 발견하게 한다. 오델로는 새삼스레 백인들 세상에서 낯선 자 신의 피부색을 부끄럽게 자각한다. 자신의 피부색이 결국에는 애써 얻은 사랑의 여인을 지켜내지 못하고, 같은 피부색의 젊은 부관에게 아내를 빼앗기게 하는 것인가? 늠름하고 위엄에 찬 장군 오델로는 의심과 질투, 그리고 열등감에 휩싸여 아내를 목졸라 살해한다. 데스데모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소.” 그러나 계략은 밝 혀지고 마는 법.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카시오는 자신과 데스데모나가 걸린 덫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러나 그것이 오델로의 자살을 막지는 못하였다. 신분과 인종을 넘어서서 사 랑에 빠진 딸의 혼인을 막던 아버지에게 딸은 이렇게 써 보낸 적이 있다. “아버지, 저는 제 의무가 두 갈래로 나뉜 것을 알 고 있습니다. 저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점에서 는 아버지께 의무를 다해 야 하지요. ... 아버지는 제가 의무를 다해야 할 제 주인이시고 저는 이제 껏 아버지의 딸이었습니 다. 하지만 제겐 남편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외 할아버지보다 아버지를 사모하시고 아버지를 섬 기셨던 만큼, 감히 말씀 7 드리자면 저도 제 남편인 무어인 이분께 제 의무를 다하겠어요.”(Act I, Scene 3. 그림은 Othello and Desdemona by Antonio Muñoz Degraín, 1880, the Chiado Museum, Lisbon, Portugal.) 그러나 데스데모나의 정절과 카시오의 순전함은 이아고가 오델로에게 불러일으킨 질투와 의심 을 이길 수 없었다. 오델로의 비극이 보여주는 주제는 성서에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그 비극은 세 명의 인물과 한 악령에 의해 전개된다. 곧 사울과 요나단과 다윗, 그리고 악한 영이다. 인간 왕을 세우겠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요청을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간주했던 야웨였지만, 사람들의 계속된 청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의 종 사무엘을 시켜 야웨는 왕이 될만한 인물을 골랐다. 사울이었다.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 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삼상 9:2). 이스라엘의 야웨는 사무엘에게 사울을 선택한 이유는 알려주었다. “그가 나의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해 낼 것이다. 나의 백성이 겪는 고난을 내가 보았고, 나의 백성이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내가 들었다”(삼상 9:16).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왕으로 선택된 늠름한 사울은 그에게 주어진 기대와 의무를 다 펴보지 못하였다. 야웨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사울에게서 하느님의 영이 떠나고, 대신 그 자 리에 의심과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악령이 찾아왔다. 오델로가 이아고에게 속아 데스데모나에게 분노를, 카시오에게 의심과 질투를 가졌다면 악한 영은 질투와 의심을 무기로 사울을 파멸로 몰 아갔다. 다윗이라는 젊은 영웅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게 된 일이 그 파멸의 시작이었다. “주님께 서 보내신 악한 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울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의심과 질투가 사울 의 영혼을 살라버린 것이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과 격의 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둘은 모두 자기 나라의 민중을 위해 주변 적들에 저항한 전사였고,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했으며, 존경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 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삼상 18:1-4). 옷을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다. 전사의 세계에서 칼과 활, 그리고 허리띠의 전달 역시 권위와 위엄을 전해주는 행위다. 그러나 그 사나이 사이의 깊은 우정은 아버지 사울 왕의 의심과 질투, 그리고 불안에 의 해 위협받았다. 요나단과 다윗은 왕에게 씌운 악령과 싸우면서도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경을 잃 지 않는다. 다윗은 자기 목숨을 요나단에게 맡겼고, 요나단은 아버지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다윗 을 살리려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선의와 의리도, 요나단의 정의감과 효(孝)도 질투와 의심을 몰 고 오는 악령에게 맞서기에는 부족했다. 그럴 것이다. 그것들은 데스데모나의 정절과 카시오의 순전함도 이길 수 없었던 파괴적인 것이었다.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아 8:6)이니. 늠름한 사울과 오델로의 생기 있는 삶을 앗아가고 주변의 선한 인물들을 고통을 몰아간 그 악덕들이 더 욱 무서워지는 요즘이다. 시기는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자신은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때 일어난다. 그것은 심리적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행복감을 저해한다. 그러한 정서가 자신이 질투를 느끼는 상 대를 해코지하려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시기의 긍정적 부분을 말할 수도 있다. 가령 시기 는 시기심을 느끼는 사람의 상태에 변화를 준다. 다만, 그 정서적 에너지가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시기의 파괴적인 힘에 주목한 중세 기독교는 이른바 칠죄종, 곧 일곱 가지 죽음에 이르는 죄 8 가운데 시기를 포함하였다. 창세기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카인은 자신의 제사가 거절되고 아벨의 제사가 하느님에게 수용된 것을 시기하고, 동생 아벨을 죽인다. 이후에도 끊임 없이 ‘나쁜 눈’ 곧 시기의 눈을 경고한다. 나쁜 눈은 어두운 내면의 반영이며 결국 빛을 잃은 눈 은 우리를 죽음의 길로 데려간다. 시기를 지우려 노력하기보다는 시기에 틈을 주지 않는 기쁨과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하느님을 바라보 며 사는 사람이고, 그분 안에서 삶의 풍성함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 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비록 그것이 고통의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각자의 몫이 있음 을 알려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