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이기고_자랑하느니라#약2:12-14#김천부상교회#20261011
예수산소망(황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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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이기고_자랑하느니라#약2:12-14#김천부상교회#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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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산소망(황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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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13절은 하나님의 속성인 ‘긍휼’과 무서운 ‘심판’의 대비를 보여준다.
긍휼을 베푸는 삶이야말로 우리의 타락한 옛 사람이 죽고
십자가의 고난과 승리를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깨닫게 되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한 인간 본성(자아)은 근본적으로 '자기방어적'이며 '율법적'이다.
자기는 하나님께 용서와 긍휼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며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기를 요구하고 있다.
약 2장의 문맥처럼, 세상적인 기준으로 가난하고 볼품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본성에 충실한 '살아있는 옛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나 '긍휼을 베푸는 것'은 내 타락한 본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이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정죄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
나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을 무시하려는 '교만한 우월감'을 내려놓는 것이
곧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철저한 '자기 부인'이 아닌가?
믿음과 순종으로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자, 자기가 살아서 끝까지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철저히 자신이 행한 자기 중심적 율법적 잣대를 따라
긍휼 없는 심판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긍휼은 단순한 동정심(감정)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고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 살려내는 적극적인 행동(행함)이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심판하시는 대신
스스로 고통과 저주를 뒤집어쓰신 '궁극적 긍휼의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일상에서 재현(짊어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는 억울함을 참고,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며, 자존심을 꺾어야 하기 때문이다.
긍휼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타인의 죄와 허물, 약함, 야고보서의 맥락에서는
빈부 격차로 인한 가난한 자들의 짐을
우리 어깨에 대신 짊어지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져야 할 믿음과 순종의 흔적인 '자기 십자가'이다.
긍휼은 십자가를 통과한 자만이 흘려보낼 수 있는 피 묻은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긍휼은 심판을 향해 (승리하여) 조롱(환호)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은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고 남을 밟고 서야 승리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의 승리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믿음과 순종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히는 '긍휼의 십자가'를 지면
당장은 지고 손해 보는 것 같고, 조롱과 수치를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이후 부활의 승리로 죽음과 심판을 이기셨듯이,
우리의 이익을 포기하고 남에게 흘려보낸 긍휼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긍휼과 연결되어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이겨내고 승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ㅎ게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의 원리는 우리가 긍휼로 남을 살릴 때(십자가 죽음),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덮어 영원히 살게(부활의 승리)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13절은 "우리 안의 차별과 정죄, 심판하고자 하는
'교만한 자기를 부인하는, 못 박아 죽이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까지
불쌍히 여기며 끌어안는 '긍휼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그 길이 믿음과 순종으로 자기를 부인하며 죽이는 고통의 길이지만,
결국 그 십자가의 긍휼만이 다가올 모든 정죄와 심판을
이겨내는 부활의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