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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안에 머무는 삶이란?] 2026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이병근 신부) 영흥 성당

병근병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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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안에 머무는 삶이란?] 2026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이병근 신부) 영흥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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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근병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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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리스도인의 비결(연중 제25주간 화요일) https://blog.naver.com/daumez/2244197... 성녀 체칠리아는 복음서를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말씀을 곁에 둔 것이 아니라 심장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 사막의 성 안토니오는 성당에서 들려온 복음 한 구절,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를 자신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날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 성 아우구스티노는 방황 끝에 "집어 들고 읽어라"라는 소리를 듣고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펼쳤습니다(로마 13,13-14 참조). 그 한 구절 앞에서 오랜 망설임이 끝났습니다. ​ 성 예로니모는 평생을 말씀 곁에서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성경을 옮기고 또 옮기며 말씀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는 수도 규칙의 첫마디를 "들어라"로 시작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날마다 말씀을 읽고, 되새기고, 기도하며 말씀 안에서 하루를 살았습니다.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복음을 듣고(마태 10,9-10 참조)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다" 하며 지팡이와 신발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설명하지 않고 복음을 입었습니다. ​ 성 도미니코는 길을 걸을 때마다 마태오 복음과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지니고 다녔습니다. 말씀을 먼저 먹었기에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는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읽다가(1코린 12-13 참조) "나의 성소는 사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사랑이 되기로 했습니다. ​ 성 샤를 드 푸코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외치고자 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한 권의 복음서였습니다. ​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는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늘 한 손에 담아 가르쳤습니다. "You did it to me", 너희가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다섯 단어를 다섯 손가락에 하나씩 짚으며 손을 펼칠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의 얼굴에서 그 말씀을 날마다 살았습니다. ​ 성인들은 말씀을 더 많이 안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대로 산 사람들입니다. https://blog.naver.com/daumez/2244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