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 музее в снегопад | playlist
추리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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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 музее в снегопад | play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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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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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에게서 복숭아 냄새가 났다.
남쪽 복도 벽에 바른 분홍색 페인트 냄새였다.
그 복도에 가지 않았다면 날 수 없는 냄새였다.
렌은 눈 긁는 쇠주걱을 들고 복도 끝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렌은 그 복도를 언제 지나간 걸까.
*
미술관은 아오모리 북쪽 끝, 산등성이에 반쯤 묻혀 있었다.
눈은 나흘째 그치지 않았다.
벽을 타고 쌓인 눈이 이 층 높이까지 올라와 유리창을 하나씩 막았다.
겨울이면 문을 닫는 미술관이었다.
봄까지 건물을 지키는 사람은 셋이었다.
렌과 나, 그리고 올가을에 처음 온 모즈.
미술관 한가운데에는 하늘로 뚫린 사각의 정원이 있었다.
바닥이 움푹 꺼진 그 정원에는 이미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눈이 차 있었다.
그 흰 구덩이 한복판에 미술관의 상징인 다면체가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한쪽 면은 피처럼 붉고, 다른 쪽 면은 덜 익은 레몬 같은 연두색이었다.
누가 하늘에서 떨어뜨린 커다란 편지 봉투 같았다.
받는 사람도 보낸 사람도 적혀 있지 않은.
*
렌과 이 미술관에서 겨울을 나는 건 일곱 번째였다.
첫해 겨울, 렌은 이 층 유리벽 앞의 한 자리를 가리켰다.
여기서 보면 정원이 제일 예뻐.
그 뒤로 나는 정원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섰다.
일곱 해 동안 한 번도 다른 자리에 서 본 적이 없다.
렌은 그걸 알고 있었다.
*
모즈는 여름을 좋아했다.
첫눈이 내린 날, 모즈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 제일 먼저 반소매를 입을 거야.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같이 나가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모즈는 위성 전화기가 든 푸른 가방을 늘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눈이 조금만 약해지면 산 아래로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구조를 부르겠다는 말이었다.
렌에게는 나를 데려가겠다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
정오를 조금 넘겼을 때 렌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렌은 턱으로 정원 쪽을 가리켰다.
나는 늘 서던 자리에 섰다.
유리벽 너머, 칼날처럼 선 눈 능선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모자 달린 진홍색 방한복에 짙은 눈 보호 안경, 양손에는 스키 폴을 쥐고 있었다.
모즈의 옷이었다.
그는 꼼짝 않고 제 얼굴 앞의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이마 바로 앞에 검은 거미 한 마리가 가는 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이 추위에 살아 있는 벌레라니.
나는 그 작은 다리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즈야."
렌이 낮게 말했다.
"저기서 뭘 하는 거지. 저러다 얼어 죽겠어."
그때 눈보라가 유리벽을 후려쳤고, 세상이 하얗게 지워졌다.
바람이 잦아든 건 삼십 분 뒤였다.
능선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원 바닥, 붉은 면과 연두색 면이 맞닿은 모서리 아래로 진홍빛 천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그 둘레로 붉은 것이 번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렌이 유리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내쉬었다.
"발을 헛디뎠나 봐. 저 높이에서 떨어졌으면……"
렌은 말을 끝맺지 않았다.
나는 유리에 손바닥을 댔다.
차가움이 손목을 타고 뼈까지 올라왔다.
*
어젯밤 나는 바퀴 소리를 들었다.
자정이 조금 지나서였다.
무거운 것을 실은 수레가 복도를 천천히 지나갔다.
나는 이불 속에서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듣고만 있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렌이 또 작품 상자를 옮기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하기로 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
정원으로 나가는 비상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었다.
모즈가 정원으로 나갔다면 잠금은 풀려 있어야 했다.
나는 렌이 보지 않을 때 지하 통제실로 내려갔다.
발전기가 덜컹거릴 때마다 불빛이 흔들렸다.
출입 기록을 되감았다.
비상문은 나흘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모즈는 정원에 나간 적이 없었다.
남쪽 전시실 복도의 녹화 화면에 모즈가 있었다.
분홍빛 벽에 야자수와 고리 달린 행성, 엎드린 표범이 그려진 복도였다.
화면 구석의 시각은 어젯밤 열두 시 십사 분이었다.
모즈는 초록색 반소매 셔츠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붉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눈에 갇힌 산속에서 한여름 옷차림이었다.
그 옆에 흰 형체가 붙어 걷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대보를 뒤집어쓰고 눈구멍 두 개만 뚫은 모습이었다.
흰 형체의 손에는 모즈의 푸른 가방이 들려 있었다.
가방 옆구리에 칼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화면을 멈추고 확대했다.
모즈의 팔은 흔들리지 않았다.
발끝은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 떠 있었다.
두 발목이 침대보 자락 아래 감춰진 수레의 축에 묶여 있었다.
모즈는 걷고 있지 않았다.
실려 가고 있었다.
나는 화면 속 모즈의 반소매를 오래 보았다.
여기서 나가면 제일 먼저 반소매를 입을 거야.
누군가 모즈에게 그 여름을 입혀 주었다.
모즈가 바라던 것 가운데 렌이 들어줄 수 있는 건 그것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갔다.
늘 서던 자리에 섰다.
내 눈높이에 정확히 맞춘 곳, 유리 안쪽 면에 투명한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거기서 늘어진 가는 줄 끝에 플라스틱 거미가 매달려 있었다.
눈앞 이십 센티미터에 작은 것이 흔들리면 사람의 눈은 거기에 묶인다.
가까운 것에 초점이 맞는 동안 이십 미터 밖의 능선은 붉은 얼룩으로 뭉개진다.
그 얼룩이 사람인지 아닌지 따질 틈이 없다.
능선 위에 서 있던 건 눈 치우는 장대 두 개에 모즈의 방한복을 걸쳐 놓은 허수아비였다.
환기창 틈으로 낚싯줄이 이어져 있었다.
눈보라가 시야를 덮은 순간 줄을 당기기만 하면 됐다.
모즈의 몸은 이미 어젯밤 옥상의 자재 투입구를 통해 정원으로 내려져 있었다.
바퀴 소리가 멀어지던 그 무렵이었다.
나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 렌이 늘 서던 자리에 서 보았다.
거기서는 정원이 보이지 않았다.
유리에 비친 내 옆얼굴이 보였다.
렌은 내가 어디에 설지 알았다.
내가 어디를 볼지도 알았다.
일곱 해 동안 나는 렌이 가리키는 곳만 보았고, 렌은 나만 보았다.
*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렌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넓적한 쇠주걱이 들려 있었다.
복숭아 냄새가 가까워졌다.
"봤구나."
렌은 웃지 않았다.
목소리에는 아무 흔들림이 없었다.
"모즈는 말이 너무 많았어. 우리는 여기서 봄만 기다리면 됐는데, 자꾸 눈을 헤치고 나가서 사람들을 부르겠다고 했잖아."
렌은 '우리'라고 말했다.
그 안에 모즈는 없었다.
"그래서 죽였어?"
렌이 쇠주걱에 붙은 눈을 가볍게 털었다.
"누군가 하나는 눈 속에 잠들어야 이 고립이 완성되니까."
그리고 덧붙였다.
"너도 대답 안 했잖아. 같이 나가자고 했을 때."
*
창밖에서 다시 바람이 일었다.
눈이 붉은 다면체를 덮기 시작했다.
모즈의 진홍색 천도, 붉은 면과 연두색 면의 경계도 차츰 지워져 하나의 흰 평원이 되어 갔다.
아무도 받지 못한 봉투가 그렇게 묻혔다.
나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렌이 다가오는 걸음에 맞춰 숨을 골랐다.
일곱 해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유리벽에 부딪힌 눈송이들이 바스락거리며 무너지는 소리만 전시장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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