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더화이의 죽음, 중국현대사 43회
북연TV-현대중국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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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더화이의 죽음, 중국현대사 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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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조선전쟁 정전협정 체결 후 개선장군으로 베이징으로 귀국한 펑더화이(彭德怀)도, 1959년 여름 루산(庐山)회의에서 마오쩌뚱에게 토사구팽, 숙청당하고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다가, 1966년 "문혁"이 발발한 후에는 전문조사팀(专案组)에 심문 당하고, 홍위병들에 의해 군중비판대회에 끌려 다니며 학대, 폭행 당하다 대장암 발병후 수술 끝에 베이징의 군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시신은 베이징 화장장에서 화장된 후 유해는 왕촨(王川)이란 가명으로 쓰촨성 청두(成都) 교외의 한 납골당 선반에 6년간 방치되었다. 1976년 9월, 마오쩌뚱이 죽고, 1978년 12월, 개혁개방이 선언된 중공 11기3중전회에서 펑더화이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이어서 베이징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유해도 청두에서 베이징으로 옮겨와 바바오산(八宝山) 혁명열사묘지에 안장되고, 그후에 다시 조카들의 탄원이 받아 들여져서 다시 고향인 후난성(湖南省) 샹탄(湘潭)으로 옮겨져 이미 그곳에 묻혀 있던 두 동생의 묘 옆에 함께 안장된다.
#중국공산당사 #중국현대사 #펑더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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