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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능지형을 내린 세조는 왜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에게 「자기 죄로 죽은 게 아니다」라고 했을까

실록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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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능지형을 내린 세조는 왜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에게 「자기 죄로 죽은 게 아니다」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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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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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년 음력 10월 20일, 세조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남편 영양위 정종에게 능지형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공주를 볼 때마다 「너의 남편은 자기 죄로 벌을 받은 게 아니다, 내가 몹시 불쌍하게 여긴다」고 말했다고 실록은 전합니다(1473년 5월 2일, 정희왕후의 전교). 남편에게 능지형을 정한 세조는, 왜 그 아내에게는 남편이 자기 죄로 죽은 게 아니라고 했을까요? 능지형이 정해지고 사흘 뒤, 세조는 환관을 광주로 보내 공주를 서울로 데려오게 합니다. 흔히 이 공주가 남편을 잃고 노비가 됐다고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실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공주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경혜공주」라는 자기 이름을 새긴 붉은 도장을 찍은 문서 한 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문종의 맏딸이자 단종의 누나, 정미수의 어머니인 경혜공주의 마지막을 1450년 혼례부터 1473년 마지막 도장까지 실록 날짜로 따라갑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 1461년 10월 20일과 23일 — 남편의 능지형, 그리고 사흘 뒤 광주로 간 환관 · 1461년 11월 4일 · 12월 14일 — 「연좌하지 말라」, 「문종의 적녀이며 또한 죄가 없으니」 · 1450~1451년 — 평창 군주의 혼례, 30여 채라던 집터에서 거의 40채가 헐린 공주의 집 · 1453년 — 왕이 된 동생 단종이 옮겨 와 머문 누나의 집 · 1455년 — 선위 날 내려진 남편의 영월 귀양 명, 공주의 병과 상왕의 부탁, 수원에서 통진까지 · 1456~1461년 — 광주의 높은 담, 「성불했다」에서 「충신이 되어 죄를 받았으니」까지 · 1462~1469년 — 돌아온 이름과 노비 50구, 세조의 눈물, 예종에게 써 두게 한 당부 · 실록에 없는 이야기 — 순천 관비와 관아의 대청(월정만필 · 연려실기술) · 1473년 4~5월 — 아들 정미수의 벼슬 다툼, 그 말을 꺼낸 정희왕후 · 1473년 12월 27일 — 「경혜공주」 붉은 도장을 찍은 분재기, 그리고 사흘 뒤 · 그 뒤 — 「나는 문종의 외손입니다」, 1791년 정조의 치제, 고양 대자동의 묘 ⏱ 타임스탬프 00:00 남편을 죽인 세조가 공주에게 한 말 01:17 능지형 사흘 뒤, 광주로 간 환관 06:30 1450년 혼례, 아버지가 지어 준 집 12:45 계유정난 뒤, 영월에서 통진까지 19:16 광주, 높은 담 25:06 돌아온 이름, 경혜 공주 30:47 실록에 없는 이야기 — 순천의 대청 34:20 1473년, 그 말이 나온 자리 39:40 죽기 사흘 전의 붉은 도장 43:33 다시, 1461년 10월 20일 사정전 44:52 고양 대자동, 공주의 묘 📍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국가유산 미지정 · 안내 표지 없음) 📜 참고 사료 [1차 사료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450년 1월 24일 · 『문종실록』 1451년 4월 3일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 https://sillok.history.go.kr/id/kea_1... 『단종실록』 1453년 3월 9일 · 7월 10일 https://sillok.history.go.kr/id/kfa_1... https://sillok.history.go.kr/id/kfa_1... 『세조실록』 1455년 윤6월 11일 · 17일 · 8월 13일 · 19일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세조실록』 1456년 6월 27일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세조실록』 1461년 7월 26일 · 8월 22일 · 10월 20일 · 23일 · 11월 4일 · 12월 14일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세조실록』 1462년 5월 4일 · 1465년 4월 1일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 『예종실록』 1469년 1월 29일 · 4월 10일 · 12일 https://sillok.history.go.kr/id/kha_1... https://sillok.history.go.kr/id/kha_1... https://sillok.history.go.kr/id/kha_1... 『성종실록』 1473년 4월 11일 · 28일 · 5월 2일 · 12월 30일 · 1474년 1월 1일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성종실록』 1476년 3월 11일 · 1488년 1월 20일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 『중종실록』 1518년 7월 5일 · 『정조실록』 1791년 3월 16일 · 9월 24일 https://sillok.history.go.kr/id/kka_1... https://sillok.history.go.kr/id/kva_1... https://sillok.history.go.kr/id/kva_1... [2차 자료] 경향신문 (2012-07-24) https://www.khan.co.kr/article/201207... 국민일보 (2012-07) https://www.kmib.co.kr/article/view.a... 서울신문 (2012-07-25) https://www.seoul.co.kr/news/life/201... 우리문화신문 (2023-09-15) https://www.koya-culture.com/mobile/a... 한국고전종합DB — 월정만필 · 연려실기술 https://db.itkc.or.kr ※ 영상 속 그림은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 그린 것입니다. 실록에 없는 이야기는 영상 안에서 따로 구분했습니다. 날짜는 모두 음력이고, 사흘 · 54일은 실록 기사의 간지로 센 값입니다. 『세조실록』은 세조 쪽 사람들이 엮은 기록입니다. 세조가 공주에게 했다는 말은 세조가 세상을 떠난 뒤 1473년 5월 2일 정희왕후의 전교로 실록에 남은 것입니다. 정종은 능지형을 정한 기사만 있고, 언제·어디서 집행됐는지 적은 기사는 찾지 못했습니다. 분재기는 실록이 아니라 2012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발표와 그때의 신문 보도로 확인한 내용입니다. 🔔 날짜로 남은 조선 사람들의 마지막, 매주 화·금·일 저녁 6시에 이어집니다. 구독으로 함께해 주세요. ▶ 이어 보기 — 재생목록 「궁궐 여인들의 마지막」 · 「계유정난의 사람들 — 그 뒤」 #경혜공주 #단종 #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