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7년 몰아보기 | 한 번도 지지 않은 이순신을 선조는 왜 죽이려 했나 | 조선왕조실록 l 난중일기
실록과 야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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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 몰아보기 | 한 번도 지지 않은 이순신을 선조는 왜 죽이려 했나 | 조선왕조실록 l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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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과 야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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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을 부산에서 노량까지 한 편으로 몰아봅니다.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이고, 적을 놓아주어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이다. … 율을 상고하여 죽여야 마땅하다."
― 『선조실록』 1597년 3월 13일, 선조의 비망기
◆ 오늘 펼친 기록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 6월 25일, 전쟁 공신을 정한 날의 기사.
임금을 따라 의주까지 간 호성공신이 86명, 그 가운데 내시가 24명이었습니다. 바다와 들판에서 싸운 선무공신은 18명이었고, 1등에 이순신·권율·원균이 올랐습니다. 사관은 "또한 외람한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적었습니다.
◆ 세 가지 물음
하나. 한 번도 지지 않은 장군을 왜 죽이려 했나 ― 1597년 2월 6일 체포 전교와 3월 13일 사형 비망기
둘.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은 어디에 적혀 있나 ― 실록에는 없고, 정조 때 엮은 『이충무공전서』에서 전해짐
셋.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왜 두 실록이 다르게 적었나 ― 『선조실록』에는 이문욱이 죽음을 숨기고, 60여 년 뒤 『선조수정실록』에 이순신의 마지막 말과 조카 이완이 나옴
◆ 영상의 차례
0:00 선조의 비망기, 이순신의 죄
0:30 남은 배
2:25 탄금대의 진
4:47 압록강 바로 앞
6:21 첫 싸움
7:09 한산도 대첩
7:27 의병과 진주대첩
9:03 명군과 평양성 탈환
10:37 행주산성과 행주치마
11:33 옛 사전
13:16 삼도수군통제사
13:54 다시 진주성
14:39 명나라 사신
16:37 첫 백의종군
17:27 원균과 칠천량
18:11 권율의 곤장
19:45 명량 해전과 열두 척
19:56 둘러본 바다
20:34 싸움 전날 밤
21:00 9월 16일 울돌목
21:42 아들 이면과 도요토미
21:56 진중의 편지
23:03 갇힌 고니시
23:42 한꺼번에 몰려온 배
23:52 노량 해전
24:22 먼저 선조실록
25:42 유성룡 탄핵
26:09 호성공신과 선무공신
27:35 아산 현충사
★출처★
· 평양 영상: Donny Ferguson / CC BY 3.0 · Wikimedia Commons
· 의주 사진: chenyingphoto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의령 사진: Academy of Korean Studies / KOGL Type 1 · Wikimedia Commons
· 평양성 사진: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KOGL Type 1 · Wikimedia Commons
◆ 시간표
1587년 ― 녹둔도 패전으로 이순신 첫 백의종군
1591년 ― 이순신 전라좌수사
1592년 1월 1일 ― 난중일기 시작 / 4월 12일 ― 거북선 포 시험 / 4월 13일 ― 일본군 부산 상륙 / 4월 28일 ― 탄금대 패전 / 4월 30일 ― 선조 한양을 떠남 / 5월 1일 ― 동파역 "내부" 논의 / 5월 3일 ― 한양 함락 / 5월 7일 ― 옥포 해전 / 7월 8일 ― 한산도 해전 / 10월 ― 진주대첩
1593년 1월 8일 ― 평양성 수복 / 1월 ― 벽제관 / 2월 12일 ― 행주대첩 / 4월 ― 한양 수복 / 6월 ― 2차 진주성 /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훈련도감
1596년 ― 명 책봉사 일본 도착, 강화 결렬
1597년 2월 6일 ― 이순신 체포 전교 / 3월 13일 ― 사형 비망기 / 4월 1일 ― 출옥·백의종군, 어머니 별세 / 7월 16일 ― 칠천량 패전 / 8월 ― 이순신 복직, 남원성 함락 / 9월 16일 ― 명량 해전 / 10월 ― 셋째 아들 이면 전사
1598년 8월 ―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 11월 19일 ― 노량 해전·이순신 전사, 같은 날 유성룡 파직
1604년 6월 25일 ― 호성·선무·청난 공신 책봉
◆ 가려서 들어 주세요
〈실록에 있는 것〉
· 선조의 "내부하는 것이 본래 나의 뜻이다", 유성룡의 반대와 "궁녀나 내시의 충성" 꾸짖음: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1일
· 이순신 체포 전교("싸움이 끝난 틈을 타서 잡아 오라"): 『선조실록』 1597년 2월 6일
· 사형 비망기: 『선조실록』 1597년 3월 13일
· 명량 보고(전선 13척·정탐선 32척, 적선 130여 척)와 "작은 승리": 『선조실록』 1597년 11월 10일
· 노량 보고와 사관의 평(이문욱이 죽음을 숨김,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선조실록』 1598년 11월 27일
·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조카 이완, 진린의 통곡, 운구 행렬: 『선조수정실록』 1598년 11월 1일
· 유성룡 파직: 『선조실록』 1598년 11월 19일
· 공신 책봉(호성 86·내시 24, 선무 18)과 사관의 평: 『선조실록』 1604년 6월 25일
· 1587년 첫 백의종군: 『선조실록』 1587년 10월 16일
〈실록 밖의 기록·전해 오는 이야기〉
·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 『이충무공전서』(정조 때 편찬)
· 거북선 포 시험, 어머니 부고, "필사즉생 필생즉사", 아들 이면의 부고: 『난중일기』
· 평양 백성들이 길을 막은 장면: 『징비록』
· 논개 이야기: 유몽인 『어우야담』
· 행주치마 어원, 정탁의 상소, 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쳤다는 이야기, 진린의 감탄, 사명대사가 데려온 3천여 명,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 통설·전승
〈저희의 풀이〉
· "나라가 백성을 두고 떠난 그해, 백성은 나라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 "열두 척보다 무서운 건 그 배를 맡긴 임금이 다섯 달 전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저희의 생각입니다.
· 원균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엇갈리며, 영상에서도 양쪽을 함께 소개했습니다.
· 날짜는 음력입니다. 명절·불난 집 비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 읽은 것들
[원사료]
· 『선조실록』 21권 선조 20년 10월 16일 / 85권 선조 30년 2월 6일 / 86권 3월 13일 / 94권 11월 10일 / 106권 선조 31년 11월 19일·27일 / 175권 선조 37년 6월 25일
·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5월 1일 / 32권 선조 31년 11월 1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누리집에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 『난중일기』, 『징비록』, 『이충무공전서』
[보도·해설]
· 한국어 위키백과 「임진왜란」「이순신」「명량 해전」「노량 해전」「행주대첩」
· 2026년 10월 현충사 은행나무길·징비록 영문 증보판 보도
◆ 이어 볼 편
· (다음 편) 병자호란 몰아보기
#임진왜란 #이순신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