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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경 계명사] 달마가 계명사에 간 이유..엄청난 스토리..1700년된 사찰 .. 대부분 소실되고 최근에 지은 절..

차이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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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경 계명사] 달마가 계명사에 간 이유..엄청난 스토리..1700년된 사찰 .. 대부분 소실되고 최근에 지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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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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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사 鷄鳴寺 계명사 앞에다 고(古)를 붙여서 고계명사(古鷄鳴寺) 라고도 합니다 이 사찰의 유래를 보면 남조(南朝)양무제 때(대통원년 527년)에 지었는데 당시엔 규모가 아주 컸다고 합니다. 이 절을 지은지 20년되던 해에 어느 날 갑작스런 날벼락을 맞고 크게 파괴되었다고 해요. 징주사, 원순사(原県寺)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 명 태조 주원장이 이 절을 다시 짓고는 이름을 계명사(鷄鳴寺 )라고 고쳐 불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절은 그간의 장구한 오랜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가던 것을 청나라 광서(Qing Guangxu) 시대에 재건되었으며 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것을 1985년에 다시 수리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경에서 가장 오래되고 그리고 황실 사찰의 하나로 남조시대 사찰중 최고라고 합니다. 바로 이 계명사에는 중국에 선종의 첫 씨앗을 심으면서 중국 선종의 시초가 된 엄청난 역사와 스토리가 있었는데 석가모니로 부터 28대가 되는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종을 펴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와 양무제와 법담을 나눈 유서 깊은 절로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에 이르기 까지 참선 수행법을 처음으로 전하여 준 수행도량의 성지라고 합니다. 당시 이 절에서 달마대사를 친견한 양무제는 달마대사에게 “짐이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불경을 번역했으며 수 많은 승려를 공양하여 왔는데 그 공덕이 어떠한가.”라고 묻자, 이에 대사는 “하나도 없습니다.(소무공덕 所無功德)”라고 하였다네요. 화가 난 양무제는 “그렇게 말하는 내 앞에 선 그대는 누구냐.”고 하자 대사는 “그런 것은 나는 모릅니다.”라고 한 후, 양무제와 인연이 없음을 알고 홀연히 양쯔강을 건너 숭산 소림굴로 들어가 9년 동안 면벽수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지금도 佛學院 이라고 하는 공간에 수양을 하는 스님들이 거주하는데 과거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주로 수행하는 절이었답니다. 계명사에는 대웅보전, 관음루, 경양루, 지공묘, 연지정, 염불당, 장경루, 약사불탑 등이 있습니다. 드라마 [대명풍화]의 배경이 된 사찰로 명 성조와 황태손 주첨기가 자주 찾는 곳 입니다. 청명절 때는 사찰 앞 도로변의 벚꽃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현무호에서 연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찰의 역사는 동오의 서현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시대에는 오나라 왕의 정원이었으며 서기 300년에 산을 끼고 건물이 조성되었습니다. 대웅보전은 비로보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찰의 최고 핵심 전당입니다. 전당 내 정중앙에서는 삼신불 중 비로불을 모시고 양쪽에는 문수, 보현 양대 보살을 모시며 동서 양쪽에는 24제천을 모십니다. 현대에 복원한 것 치고는 고전 느낌이 잘 납니다. 남경시민들이 현무호와 묶어서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보내기 위한 중요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상업화 되었는데 시주금을 받기위해 소원을 비는 연꽃 등을 매달아 놓은 모습도 특이함을 주네요. 한번 둘러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