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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황후가 60년 뒤에 열라고 봉인한 상자 | 엘리자베트

침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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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황후가 60년 뒤에 열라고 봉인한 상자 | 엘리자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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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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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집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시시가 자기 시 공책을 상자에 넣어 봉인하고 60년 뒤 스위스 연방 대통령에게 보내라고 한 뒤, 그 상자가 1951년 베른에서 열리고 1984년에 책이 되기까지 지나온 네 날짜를 따라갑니다. 초상화·머리 장식·궁정 생활·여행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시 본문은 세 줄만 읽습니다. 이 황후는 4편의 엘리자베트(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여동생,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누이)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1951년 7월 3일 화요일 아침, 스위스 베른. 연방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 바이에른에서 온 잠긴 상자 하나가 놓였습니다. 상자를 잠근 사람은 오스트리아 황후 시시입니다. 1890년에, 60년 뒤에 열라고 하고 봉인했습니다. 황후는 자기가 쓴 시를 자기 나라 빈의 문서보관소가 아니라 스위스 연방 대통령에게 맡겼습니다. 상자를 연 사람들은 나라의 중요한 문서를 기대했습니다. 나온 것은 시였습니다. 문서에 있는 것과 전기 작가가 적은 것과 제 짐작은 그때마다 갈라서 말씀드립니다. 오늘 준비한 날짜 4개 1. 첫째 날짜 · 1857년 5월 29일 · 열아홉 살 황후가 부다에서 두 살 첫딸 곁에 열한 시간 있었던 밤 2. 둘째 날짜 · 1890년 한여름 · 달리는 열차 안에서 미래의 영혼에게 편지를 쓰고 티타니아라고 서명한 날 3. 셋째 날짜 · 1951년 7월 3일 · 베른의 연방 대통령 집무실에서 상자가 열린 날 4. 넷째 날짜 · 1980년 12월 1일 · 스위스 연방각의가 출판을 허락하고 수익은 구호단체로 보내라고 정한 날 타임라인 0:00 1951년 7월 3일 아침, 베른 — 잠긴 상자 하나 1:59 1837년 뮌헨에서 태어난 아이, 시를 쓰다 3:02 1854년 — 열여섯 살에 빈의 황궁으로 3:56 1855년 — 첫딸 조피, 시어머니의 처소 4:36 첫째 날짜 — 1857년 5월 29일, 부다의 밤 6:47 스승 하이네 — 일기처럼 쓴 시, 티타니아 8:51 1889년 마이얼링, 1890년 잇달아 떠난 사람들 10:30 둘째 날짜 — 1890년 한여름, 열차 안에서 쓴 편지 13:33 편지가 정한 세 가지와 정하지 않은 것 15:00 상자가 간 길 — 시녀 페렌치, 남동생 카를 테오도어, 크로이트 17:54 셋째 날짜 — 1951년 7월 3일, 베른에서 열린 상자 19:59 출판을 미룬 이유 — 문서에 있는 말 21:32 서랍 속 26년 — 1977년의 열람 요청, 하만 23:12 넷째 날짜 — 1980년 12월 1일, 출판 허가와 세 조건 24:24 1984년 책이 되다 — 티타니아, 세 줄의 시 27:32 되짚기 — 오늘 준비한 네 개의 날짜 28:13 오늘 읽은 것과 읽지 못한 것 함께 보면 좋은 영상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 어머니와 42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 황후 빅토리아 편:    •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 어머니와 42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 | 황후 빅토리아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누이 엘리자베트 편:    •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누이가 끝내 받지 못한 편지의 22년 | 엘리자베트   근거 사료: 상자가 열린 날과 문서보관소장의 보고서와 1980년 연방각의의 결정은 스위스 국립박물관이 연방 문서보관소의 문서를 인용해 쓴 글 — https://blog.nationalmuseum.ch/en/202... — 과 스위스 연방 문서보관소가 낸 글 — https://www.bar.admin.ch/bar/de/home/... — 의 문장에서 읽었습니다. 1890년의 편지는 브리기테 하만이 엮어 1984년에 나온 책 『Kaiserin Elisabeth. Das poetische Tagebuch』(오스트리아 학술원 출판사)를 옮겨 적은 글 두 편 — 독일어 원문을 옮겨 실은 글 https://eichinger.ch/eichifamilyhom/S... 과 영어로 옮긴 글 https://andrewglockhartwriter.com/201... — 에서 읽었고, 낱말 하나하나가 아니라 뜻만 옮겼습니다. 상자가 간 길(시녀 이다 페렌치, 남동생 카를 테오도어, 크로이트, 1953년의 소포)은 하만의 전기를 인용한 글 — https://historyofroyalwomen.com/?p=15... — 과 위 국립박물관의 글에서, 책의 소개(하이네를 본보기로 삼은 시, 궁정과 군주제를 비판한 일기 같은 시, 문학으로서보다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오스트리아 학술원 출판사의 책 안내 — https://verlag.oeaw.ac.at/en/product/... — 에서 읽었습니다. 시 본문은 1984년 책을 옮겨 올린 독일어 전자 도서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 https://projekt-gutenberg.org/authors... — 에서 읽었고, 종이책 자체는 보지 못했습니다. 책의 수익이 유엔 난민기구로 가는 일은 그 기구의 글 — https://www.unhcr.org/news/stories/le... — 에서, 생애의 연표와 직함과 「스위스의 정치가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한 줄은 백과사전 — https://de.wikipedia.org/wiki/Elisabe... · https://en.wikipedia.org/wiki/Empress... — 에서 확인했습니다. 황제가 아내의 시를 「구름 타기」라고 불렀다는 말과 황후가 스위스를 「자유의 마지막 항구」로 여겼을 것이라는 말은 스위스 신문 블릭(Blick)의 역사 기사가 전하는 것으로, 신문이 전하는 말이지 황제와 황후의 글에서 제가 직접 확인한 말은 아닙니다. 읽지 못한 것도 밝힙니다 — 황후가 왜 스위스를 골랐는지 적은 황후 자신의 문장, 1951년 10월 6일 연방 대통령이 루트비히 공작에게 보낸 편지와 1978년 막스 공작의 편지의 내용(사진으로 날짜만 보았습니다), 하만이 처음 공책을 열람한 정확한 해, 그리고 종이책 자체입니다. 공책이 세 권이라는 것과 시녀를 거쳐 전해졌다는 것은 전기 작가의 글 한 곳에서만 읽었습니다. 화면 자료: 당대의 그림과 사진 — 슈틸러가 1855년에 그린 포센호펜의 형제자매, 바라바시가 1853년에 그린 프란츠 요제프, 알트가 1847년에 그린 부다 왕궁, 빈터할터가 1865년에 그린 황후의 초상(빈 호프부르크), 오펜하임이 1831년에 그린 하이네, 벤추르가 1884년에 그린 안드라시, 앙게러의 1862년 사진, 라벤딩의 1867년 사진, 이다 페렌치의 1870년 무렵과 1898년 사진(헝가리 국립박물관), 마리 발레리 부부의 1912년 사진, 루트비히 빌헬름 공작의 1901년 사진, 1896년 헝가리 궁정열차 살롱차 설계도(1897년 간행) — 는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퍼블릭 도메인 자료이고, 박물관에 걸린 빈터할터 그림의 현장 사진(Vassil, 2013년)은 CC0 자료입니다. 모두 화면에 맞게 자르거나 키워 썼습니다. 지금 모습으로 보여 드린 사진 가운데 아홉 장은 저작자를 밝혀야 하는 자료입니다 — 빈 아우구스티너 교회 내부: Dennis Jarvis, CC BY-SA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 · 락센부르크 궁: IIASA, CC BY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 · 마이얼링 카르멜 수녀원 항공 사진(2022년): C.Stadler/Bwag,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 · 헤르메스빌라(2017년): Anna Saini, CC BY-SA 4.0 · 빈 국립문서보관소 문(2010년): Andreas Praefcke, CC BY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 · 베른 연방궁 서관(2019년): Arkhein Drakenov, CC BY-SA 4.0 · 베른 연방궁 정면(2018년): Balise42, CC BY-SA 4.0 · 뮌헨 안과 병원에 걸린 카를 테오도어 초상의 현장 사진(2025년): Burkhard Mücke, CC BY-SA 4.0 · 에두아르트 폰 슈타이거의 1943년 연감 초상 스캔: René Hourdry, CC BY-SA 4.0. 아홉 장 모두 크롭과 확대로 고쳐 썼고, 화면 오른쪽 아래에도 저작자를 적었습니다. 그 밖의 화면 — 본편 그림 96장과 첫 2분의 영상 17개 — 는 모두 AI로 다시 그린 재현이고, 재현 화면 속 종이와 공책의 글자는 실제 글자가 아닙니다. 황후의 손글씨 공책과 1890년 편지와 1951년 보고서의 원본은 화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화면의 세 가지 표시는 근거 등급입니다 — 「기록에 있음」은 문서보관소의 날짜와 보고서, 연방각의의 결정, 그리고 책을 펴낸 곳이 적은 말, 「후대의 전승」은 전기 작가가 적은 상자의 경로와 공책의 모양, 신문이 전한 남편의 말, 「학자들의 추정」은 사진이 남지 않아 그림으로 다시 그린 장면입니다. 가설과 확인된 사실은 영상 안에서 구분해 표기했습니다. #시시 #엘리자베트황후 #오스트리아황후 #프란츠요제프 #브리기테하만 #티타니아 #스위스연방문서보관소 #합스부르크 #비텔스바흐 #19세기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