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7대 전투 1편 — 통영상륙작전 완전 정리 "귀신 잡는 해병, 여기서 시작됐다","창설 1년 4개월, 첫 상륙작전","37일간의 통영상륙작전"
훈의 궁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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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7대 전투 1편 — 통영상륙작전 완전 정리 "귀신 잡는 해병, 여기서 시작됐다","창설 1년 4개월, 첫 상륙작전","37일간의 통영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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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6.25 전쟁이 터진 지 두 달,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서 방어에 급급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먼저 나서서 적을 공격한 부대가 있었어요. 바로 해병대예요. 오늘은 해병대 7대 전투의 첫 번째, 통영상륙작전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이 영상에서는 창설 1년 4개월 된 신생 부대가 감행한 최초의 상륙작전, 330명이 상륙정에 올라 통영반도를 탈환하기까지의 과정, 원문고개를 사수한 8월 19일부터 20일까지의 격전, 37일간 이어진 작전의 전과, 그리고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이 탄생하게 된 배경까지 함께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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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스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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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인트로 — 낙동강까지 밀리던 그 시절, 유일하게 먼저 공격한 부대가 있었어요
00:26 창설 1년 4개월 된 신생 부대의 첫 상륙작전
01:24 330명이 상륙정에 오르다
02:08 원문고개를 사수하다
02:57 37일간의 전투, 그리고 새로운 별명의 탄생
04:15 낙동강 방어선 속에서 국군이 유일하게 공격에 나섰던 순간
04:49 창설 1년 4개월, 첫 상륙작전에서 만들어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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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통영상륙작전 핵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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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창설 배경: 1948년 여순 10.19 사건 진압 과정에서 신현준 중령이 "상륙군 없이 반란군 완전 진압 불가"를 보고,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지시로 1949년 4월 15일 진해에서 380명 규모로 창설
작전 배경: 1950년 8월 16일, 북한군 7사단 51연대·104치안연대(총 650명)가 고성에서 통영으로 진격, 다음 날 새벽 통영 시내 침입. 목표는 통영→거제도→임시수도 부산 진격로 확보
상륙 개시: 1950년 8월 16일 밤 10시 출발, 8월 17일 저녁 6시 김성은 대령 지휘 해병대 330명이 통영반도에 상륙(대한민국 해병대 창설 이래 최초 상륙작전), 해군함정 7척 지원
민관 협력: 통영 군민들이 상륙 이후 군수품을 지게와 머리에 이고 운반, 40~60대 노인과 초·중학생, 아낙네까지 쌀가마니·박격포 운반에 동참
통영 탈환: 인민군이 시내로 나간 사이 해병대가 망일봉 진지 장악, 이틀간의 혈전 끝에 통영 탈환
원문고개 사수: 임진왜란 한산대첩 당시 일본군 진출을 막았던 바로 그 지역. 8월 19일 오후 3시 40분경부터 약 3시간 580발 포격, 8월 20일 새벽 2시 40분 해안선 침투 시도 등 반복된 공격을 모두 격퇴
작전 기간 및 전과: 1950년 8월 17일~9월 22일(37일간), 아군 전사 15명·부상 47명, 적군 사살 469명·포로 83명
별명의 유래: 미국 종군기자 마가렛 히긴스가 통영 탈환 해병대를 보고 "그들은 악마라도 잡을 수 있겠다"고 언급한 것이 "귀신 잡는 해병" 별명의 가장 유력한 기원으로 기록. 다만 해병대 내부 증언은 엇갈려 1951년 김일성고지 전투설, 1952년 이후 양도 전투설도 존재
역사적 의의: 6.25 전쟁 발발 후 국군이 유일하게 선제공격으로 승리한 작전, 인천상륙작전(9월 15일)보다 한 달 앞선 반격의 신호탄, 해병대 창설 이래 최초 상륙작전
※ 이 영상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으며, 세부 전투 묘사는 사실관계 위에서 자연스럽게 살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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