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1일 주일 예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삿 19:1~9/ 백승엽 목사/ 마드리드 서바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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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1일 주일 예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삿 19:1~9/ 백승엽 목사/ 마드리드 서바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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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사사 시대의 심각한 타락은 레위인들마저도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은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레위인의 행동은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삿 17장과 18장, 19장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사람은 레위인입니다. 17장에서는 한 레위인이 미가라는 집의 개인 제사장이 됩니다. 은과 의복, 먹을 것과 집을 얻는 조건입니다. 18장에서는 같은 레위인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됩니다. 미가 한 가정의 제사장보다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18:19). 19장에서는 다른 레위인이 첩을 맞이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레위인은 모세 시대부터 성막에서 봉사하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오늘날로 성전에서 일하는 성직자와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편안함에, 이성에 넘어간 모습입니다.
19장의 레위인은 ‘남편’이라 되어 있지만 아내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했지만 장례를 치루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내의 시체로 이스라엘 지파를 동원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레위인은 자기의 직분에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를 찾기 위해 장인의 집에서 5일을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아내와 다정하게 대화한 기록이 없습니다. 기도한 내용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며” 그저 5일 동안 장인과 함께 휴식을 취했습니다(19:6).
또한, 말은 “여호와의 집으로 간다.”고 하였지만 급하지 않아 보입니다. 원래 레위인은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서 도피성에 살았습니다. 부지 중에 잘못한 사람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하는 레위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5일째 되는 날 출발하는 것도 밤에 출발합니다. 이렇게 밤에 가다가 숙식할 곳을 찾게 되었고 그러다가 기브아의 불량배들에게 위험한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17:6절과 21:25절에서 이 모든 일은 “왕이 없었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머무는 시간, 출발 시간, 결혼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레위인이 이렇게 될 때까지 막아주거나 권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첩을 맞이할 때도 첫 번째 부인의 아내와 장인이 안 된다고 했어야 했습니다. 자기 딸을 위해서라도, 레위인의 사역을 위해서라도 말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위는 말을 안 들었습니다. 장인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른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도 됩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아내와 함께 기브아에 유숙하려고 할 때에 아무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밤에 갑자기 오는 것이 문제였지만 받아주지 않으니 노인의 집에 머물게 되었고 기브아 불량배를 만나게 됩니다. 서로 서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레위인이 첩을 맞이했더라도 시작을 하는데 끝은 이스라엘 전체의 내전으로 마치게 됩니다. 19:30절 말씀대로 애굽에서 올라온 날부터 이런 사건은 처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길 바랍니다. 좋은 일로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는 역사를 만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레위인의 잘못을 보면서 잘못이 계속된다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앞의 레위인도 그랬으니 나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별 문제 없이 미가의 집에 있다가 숫자가 많은 단 지파로 갔으니 그렇게 옮겨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첩을 아내로 맞이하는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레위를 징계하거나 벌을 받는 내용이 없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이 레위 편에 서서 베냐민과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괜찮아도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