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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않는 믿음(시 11:1-7)

윤봉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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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않는 믿음(시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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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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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망치지 않는 믿음 본문: 시편 11편 1~7절 1.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까?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다 무너지는 것 같다.” 가정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건강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이 너무 악해지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시편 11편에도 바로 그런 상황이 나옵니다. 다윗은 대적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여 은밀히 그를 쏘려 하는 극도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1-2절).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산으로 새처럼 도망하라"고 조언합니다(1절). 그러나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어찌 내 영혼에게 새처럼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하느냐"고 반문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성전에 계시고 하늘에 보좌를 두시고 세상을 감찰하신다는 사실(4절)을 근거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결국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시며(5-6절), 의로우신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시므로 정직한 자가 그 얼굴을 뵈오리라(7절)는 확신으로 마무리됩니다. 시편 11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윗의 생애 어느 사건을 배경으로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때일 수도 있고, 정치적 혼란이나 대적의 위협 속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가 구체적인 사건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 사건으로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시편 10편에서 시인은 악인이 득세하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1편은 그 고백을 한 걸음 더 밀고 갑니다. “그러면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때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답이 이것입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2. 성도는 위기가 닥쳤을 때 먼저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1-3절) 기초가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 신뢰하던 사람들의 조언, 두려움이 몰려올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피난처를 옮기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문제는 위기 자체가 아니라, 그 위기 앞에서 어디로 피할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위기가 오면 자꾸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문제가 커지면 하나님보다 문제가 더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쉽게 말합니다. “이제 끝났다.” “이건 방법이 없다.” “이 상황에서는 믿음이고 뭐고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 인간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이는 것만 보고 전체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커지면 믿음보다 계산이 앞섭니다. 이것이 인간의 무능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절망하거나,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불안해합니다. 다윗은 1절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한다”는 말이 두 번 나오지만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첫 번째 반응은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현실 도피처로 삼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나의 안전과 판단과 소망의 최종 근거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를 버리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세상의 기초는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의 핵심은 무조건 물리적인 피난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다윗 자신도 실제로 위험을 피해 도망한 적이 많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잊고 현실만 보고 움직이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행동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3절의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라는 표현에서 “터”는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떠받치는 기본적인 토대, 곧 공의와 법과 질서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황은 이렇습니다. “정의도 무너졌고, 질서도 무너졌고, 악인이 판을 치는데 의로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주변 사람들의 절망적인 판단입니다. 3. 다윗의 피난처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었다. 땅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보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4절) 4절은 시편 11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사람들은 3절에서 말했습니다. “터가 무너졌다.” 그런데 다윗은 4절에서 말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보좌는 무너지지 않았다.” 여기서 “그의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나타내고,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라는 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주권을 강조합니다. 4.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드러난다(5절)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권세를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강해 보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안전해 보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보다 그 사람이 더 강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만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늘을 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현실을 크게 보고 하나님을 작게 보는 것입니다. 5절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나님이 “통촉하시고 감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정확하게 살피고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악도 사랑하고 선도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인의 성공을 보고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악인의 현재가 악인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리고 의인의 고난도 의인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 마지막에는 악이 아니라 의가 승리합니다(6-7절) 6절은 매우 강한 심판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불과 유황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다윗의 감정적인 복수심으로 보면 안 됩니다. 본문은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7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소망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도의 최종 소망은 단순히 악인이 벌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사람의 평가 때문에 너무 흔들리지 마십시오. 누군가 나를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반대로 사람을 속였다고 안심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사람 앞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삽시다. 죄가 있다면 숨기지 말고 회개합시다. 억울함이 있다면 복수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두려움이 있다면 세상의 보좌보다 하나님의 보좌를 더 크게 바라봅시다. 땅은 흔들려도 하나님의 보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의인과 악인을 다 감찰하시며, 결국 정직한 자가 그 얼굴을 뵈옵는 복을 누립니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6절) 지금 당장 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정의는 늦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7절의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라는 소망은 신약의 구속사 안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향한 소망으로 더욱 분명해집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단순히 세상 형편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대신 우리는 의를 행하십시오. 거짓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직하십시오. 미워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용서하십시오. 두려워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믿으십시오. 죄책감에 눌린 성도는 자기 죄만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을 담당하신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십시오. 우리의 마지막은 실패가 아니라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6. 기초가 흔들릴 때, 피난처를 바꾸지 말고 시선을 바꾸라. 삶의 기초(건강, 관계, 재정, 교회 상황 등)가 무너지는 것 같을 때, 우리도 "도망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응답은 회피나 타협이 아니라, 더 깊이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여전히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조급함 대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지금 부당함과 억울함 속에 있다면, 하나님의 정의는 지연될 수 있어도 반드시 실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오늘도 정직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적용 질문: 지금 내 삶에서 나를 '도망하라'고 부추기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나는 오늘 새벽, 그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다시 그분께 피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