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왜 갑자기 사라졌나|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발해 228년
반도의시간
0:00 / 0:00
발해는 왜 갑자기 사라졌나|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발해 228년
2 863 просмотра · 2 нед. назад
반도의시간
166 подписчиков
2 863 просмотра · 2 нед. назад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번영했던 발해는 왜 926년 거란군의 진격 앞에 빠르게 수도를 내주었을까요. 백두산의 거대한 분화가 나라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그리고 왕조가 사라진 뒤 발해의 수많은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요.
668년 고구려 멸망과 영주 강제 이주에서 시작해 696년 거란 반란, 대조영과 걸사비우의 동쪽 이동, 천문령 전투, 698년 동모산 건국을 따라갑니다. 《구당서》와 《신당서》가 다르게 적은 대조영의 배경,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과 여러 말갈계 집단이 함께 만든 복합 사회도 사료의 한계와 함께 살펴봅니다.
이어 무왕과 대문예의 갈등, 흑수말갈 문제, 727년 일본 첫 사행, 732년 장문휴의 등주 공격, 문왕의 56년 통치, 중경·상경·동경의 수도 이동, 5경 15부 62주,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무덤을 통해 발해가 어떻게 넓은 국가와 독자 문화를 만들었는지 알아봅니다.
후반부에서는 문왕 사후 25년 동안 여섯 왕이 바뀐 시기, 선왕 대인수의 중흥과 해동성국, 당과 일본을 오간 사신과 유학생, 기록에서 희미해진 9세기 후반을 지나갑니다. 당의 멸망과 거란의 통합, 924년 발해의 요주 공격, 925년 겨울 야율아보기의 총공세, 부여부 함락과 926년 상경 항복을 순서대로 검토합니다.
가장 유력한 백두산 천년분화 연대는 발해 멸망보다 약 20년 뒤인 946년이므로 직접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영상은 거란의 장기 팽창과 병력 집중, 발해 서북 관문의 붕괴, 구원군 패배, 상경 중심 지휘 체제의 고립을 핵심 원인으로 보되, 발해 내부 기록이 사라져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추정과 사실을 구분합니다.
마지막에는 동란국과 여러 지역의 저항, 정안국,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인의 고려 이주, 유득공의 《발해고》까지 이어집니다. 926년에 끝난 것은 발해의 중앙 왕조였으며, 사람과 문화와 기억은 고려와 요, 여진 사회와 옛 고향에서 계속됐습니다.
잠들기 전이나 휴식할 때 화면을 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228년의 발해사를 차분한 연대기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