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이던 한국은 어떻게 '독도'를 지켰을까?|6·25 전쟁 중의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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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이던 한국은 어떻게 '독도'를 지켰을까?|6·25 전쟁 중의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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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연습장에 일본 표지판까지.. '독도'는 어떻게 한국 땅으로 남았을까?|6·25 전쟁 중의 독도
[참고 자료]
• 외교부 독도 누리집: 「독도에 관한 일문일답」, 「우리 영토인 근거」,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
• 『세종실록』 지리지(1454),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 울도군수 심흥택 보고서와 의정부 지령 제3호(1906)
• 연합군 최고사령부 지령 SCAPIN 677·1033·1778·2160 (나고야대학 SCAPIN 데이터베이스)
•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미 국무부 문서: 시볼드 전보(1949. 11. 14), 양유찬–덜레스 면담 기록(1951. 7. 19), 보그스·피어리 메모(1951. 7. 31, 8. 3), 러스크 서한(1951. 8. 10), 주한 미국 대사관 답장(1952. 12. 4)과 라이트너 서한(1952. 12. 6), 덜레스 국무장관 전보(1953. 12. 9), 밴플리트 보고서(1954)
• 유엔 조약집 136권 1832호: 대일평화조약(1951)
• 일본 내각관방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 「竹島資料ポータル」·「竹島 研究・解説サイト」 (1905 각의 결정, 러스크 서한 원본 사진, 1952. 1. 28 일본 항의 문서)
• 塚本孝(쓰카모토 다카시),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nd Takeshima (Revisited)" (일본국제문제연구소, 2018)
• 시마네현 Web 竹島問題研究所: 러일전쟁과 竹島 편입, 이승만 라인 해설 / 시마네현 「竹島の日を定める条例」(2005)
• 일본 국회 회의록: 중의원 외무위원회(1952. 5. 23, 1953. 8. 1), 수산위원회(1953. 7. 28), 내각위원회(1953. 11. 6), 체신위원회(1954. 11. 27, 1955. 1. 22), 참의원 체신위원회(1954. 12. 3)
• 사사카와평화재단 도서자료센터 「竹島 Facts & Figures」 (일본 해상보안청 제8관구 보고 요약), "Japan Coast Guard Activities On and Around Takeshima"
• 국가기록원 「평화선 선언」 /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2005)
• 동북아역사재단 공개 미 극동공군 「독도폭격사건 보고서」(1948) 보도 (2026. 7)
• 동아일보·경향신문·조선일보 1947–1956년 기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독도, 평화선,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 뉴시스 2026. 7. 9 (독도 주민 현황), 울릉군 독도 방문객 통계
[회고·증언 출처]
• 일본 내무성의 반대와 외무성 야마자 엔지로 정무국장의 말(1904): 나카이 요자부로 「사업경영개요」 (시마네현 Web 竹島問題研究所 인용)
• 1906년 울릉도에 온 일본 관리들의 말: 울도군수 심흥택 보고서 / "전혀 근거가 없다": 의정부 지령 제3호
• 1947년 조사단의 강치 목격: 조선일보 1947. 8. 23 / 1948년 폭격 희생자: 경상북도 발표와 생존자 증언 (동아일보·조선일보 1948. 6)
• "들어 본 적도 없다", "잘못된 가정 위에서 일해 왔다": 주한 미국 대사관 라이트너 참사관 서한 (1952. 12. 6)
• "대체로 그런 생각으로 여러 가지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시하라 간이치로 외무성 정무차관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 1952. 5. 23)
• '독도는 한국의 것! 미국, 주권 인정': 경향신문 1953. 3. 1
• 울릉도 어민들의 대답(1953. 6. 27), 헤쿠라호 사격(1953. 7. 12), 오키호 사격(1954. 8. 23·11. 21): 일본 해상보안청 제8관구 보고 (사사카와평화재단 요약), 일본 국회 답변
• "되도록 자주 가서, 일본 땅이라는 실적을 만들겠다": 오카자키 가쓰오 외무대신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 1953. 8. 1)
• "무력을 쓰는 건 헌법이 금하고 있다": 시모다 다케조 외무성 조약국장 (일본 중의원 수산위원회 1953. 7. 28)
• 바위를 사람으로 본 선장, "상대 배가 나오면 도망쳐 오라"는 전보: 쓰지 마사노부 의원 (일본 중의원 내각위원회 1953. 11. 6)
• 나무 대포: 홍순칠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 (혜안, 1997) / 바위틈의 물: 동아일보 1956. 8
• 독도 우표 논의와 "그대로 배달하고 있다": 일본 국회 체신위원회 (1954. 12. 3, 1955. 1. 22)
• "가고시마를…": 한국 외무부 성명 (동아일보·경향신문 1954. 9. 30) / "독도는 일본 침략의 첫 희생물": 한국 정부 각서 (1954. 10. 28)
[사진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 /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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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민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 / 공공누리 제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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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et (해외문화홍보원)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 / CC BY-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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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Jiho, Korea Tourism Organization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 / 공공누리 제1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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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의 사진 (퍼블릭 도메인):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미 해군, Faces of ROK (한국전쟁 사진 모음), 미 육군,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대한민국 외무부, 미 국무부, 일본 국립공문서관, 대한제국 관보, 대한민국 관보, 연합군 최고사령부, 대한민국 외교부 독도 자료, 호주 국립기록보관소, 대한민국 체신부, 대한민국 정부 (KTV 대한뉴스),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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