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세계유산 수원화성
뚜벅이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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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세계유산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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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많은 성을 쌓아왔다. 이 가운데 수원 화성은 ‘성곽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우수한 기능을 갖췄다. 화성은 정조 때인 1794년부터 1796년에 걸쳐 완성됐다. 흔히 화성이라 하면 5.7km에 달하는 성벽과 성 안에 있는 여러 부속 시설물을 말하지만, 화성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 군주의 개혁 의지 아래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 신도시 자체를 이르는 개념으로 보아야 그 참모습이 드러난다.
정조로부터 화성 축성의 명을 받아 모든 축성 과정을 계획하고 감독했던 이는 정약용이다. 부친의 거상 중임에도 임금의 특명을 받아 수원 화성 축성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 성곽의 장점에 중국, 유럽 등 외국 성곽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성의 둘레와 높이 등 성벽의 규모와 성벽을 쌓을 재료를 정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이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는 한편, 자재를 운반하는 새로운 수레와 도르래를 사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를 고안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덕분에 공사를 빠른 시간 안에 마칠 수 있었고, 비용도 4만 냥을 절감했다고 한다.
화성 성곽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부가 파손, 손실됐으나 1975년-79년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성이 축성 당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성곽의 설계 과정, 실제 지어진 건물의 형태, 규격과 특징,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재료 가공법, 동원된 인력의 인적 사항, 예산 및 임금의 계산, 각종 공문서까지 망라돼어 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세계유산위원회 집행이사회는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특징을 고루 갖춘 근대초기 건축물의 뛰어난 모범이다”라고 했고,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화성은 18세기 군사건축물을 대표하여 유럽과 극동아시아의 성제의 특징을 통합한 독특한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