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하면 벚꽃! 하지만 광복 이후 전부 사라졌었다? [풍경이있는여행 KBS 20110423 방송]
에헤라 티비 : KB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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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하면 벚꽃! 하지만 광복 이후 전부 사라졌었다? [풍경이있는여행 KBS 2011042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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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있는여행] 아픔마저 꽃으로 피어 - 경남 진해
■ 꽃으로 피어난 영욕의 땅, 진해
진해의 4월은 아름답다. 벚꽃으로 촘촘히 수놓아진 도시는 발 딛는 곳마다 엽서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함박미소를 머금은 상춘객들은 추억을 만들기에 바쁘다.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도시 진해, 이곳은 일본이 군사목적으로 1912년에 만든 군항도시다. 도시 곳곳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이곳은 이제 아픔을 딛고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아련한 꽃의 고장이 되었다. 전국의 허다한 벚꽃 명소들이 있지만 진해의 벚꽃이 남다른 이유다.
■ 벚꽃비, 눈물이 되어 흐르다
벚꽃이 핀 진해는 한 폭의 수채화다. 1.5km의 벚꽃터널이 늘어진 여좌천이나 수많은 꽃나무와 진해만을 볼 수 있는 진해 드림로드는 진해 명소 중에 명소다.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러나 벚꽃이 순수하게 꽃 자체로 대접받지 않고, 일제의 잔재로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진해에는 10만여 그루의 벚꽃나무가 심겨졌다. 광복 이후 이 벚꽃들은 일본 국화라는 이유로 모조리 사라진다. 1960년대 가서야 진해에 심겨진 벚꽃이 제주도산 왕벚나무임이 밝혀지고 진해 땅에는 다시 벚꽃 나무가 심겨진다. 멀리서 내리는 벚꽃비가 눈물 같은 이유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져야만 했던 진해 벚꽃의 상처 때문이 아닐까.
■ 바다를 벗 삼아 들꽃처럼 사는 사람들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이 피듯이, 바다를 벗 삼아 어김없이 삶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진해에 있다. 진해 앞바다에서 40년 동안 해녀일을 해왔다는 임옥자 씨. 그녀는 꽃다운 나이 21살에 제주도에서 진해로 시집을 왔다. 해녀 집안에서 태어난 임옥자 씨는 뭍으로 시집을 왔어도 해녀의 운명을 버릴 수 없었다. 거친 바다로 나간 그녀 곁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사람은 남편 이봉은 씨. 바다에 들어간 아내에게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선상에서 아내를 지켜보는 게 이봉은 씨의 일이다.
■ 시간을 훔쳐 추억에 살다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추억은 진해의 옛 풍경 속에 존재한다. 진해 도심에 자리 잡은 진해우체국, 그 곳은 금방이라도 두 갈래로 머리를 땋고 옛날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수줍은 얼굴로 나타날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서있다. 1912년에 러시아풍 근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진해우체국은 사적 291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소사동 골목에는 마치 7~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 고물박물관이 있다. 16년 동안 전국의 고물상을 뒤져가며 옛 물건들을 수집한 김현철 씨가 운영하고 있는 ‘김씨박물관’이다. 오늘도 진해 소사동 골목에는 사라져가는 고물들에 옛 기억을 불어넣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 찬란한 도자 문화의 산실, 웅천 도요지
진해 웅천동 보개산 기슭에는 조선 시대의 찬란했던 도자 문화의 산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릇의 선이 아름답고 투박하면서도 정제된 멋이 있는 웅천 차사발은 일본의 명품으로 평가받는 이도다완의 뿌리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곳의 가마터는 임진왜란 당시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400년 간 맥이 끊긴 채 남아있게 된다. 웅천에서 나고 자란 최웅택 씨는 가마터에 꺼진 불을 다시 지핀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웅천 지역 출신 도공이던 거관의 후예로 자처하며, 옛 도공들의 방식을 고집하며 막사발을 생산하고 있다.
#진해 #벚꽃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