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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의 천재? 사실은 최악의 사기꾼이었다" 다빈치가 '최악의 천재'라 불린 진짜 이유 | 세계사 | 레오나르도다빈치 모나리자 인물사

역사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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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의 천재? 사실은 최악의 사기꾼이었다" 다빈치가 '최악의 천재'라 불린 진짜 이유 | 세계사 | 레오나르도다빈치 모나리자 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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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다빈치 #모나리자 #최후의만찬 #르네상스 #세계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는 예순일곱 해를 살고도 완성작을 스무 점 넘게 남기지 못한 르네상스의 화가이자 공학자입니다. 1481년 그가 도장을 찍은 「동방박사의 경배」 계약서에는 납기 24개월, 재료비 전액 화가 부담, 못 끝내면 그린 것까지 몰수라는 조항이 적혀 있었습니다. 1481년 봄, 피렌체 성문 바깥의 한 수도원에서 그는 그 계약서에 이름을 올립니다. 재료비를 화가가 대는 계약이라 고치고 또 고치는 그에게는 붓을 댈수록 주머니가 비는 조건이었고, 결국 색 한 겹 올리지 않은 밑그림만 남긴 채 그는 밀라노로 떠납니다. 밀라노에서는 10년을 매달린 청동 기마상의 재료가 1494년 전쟁에 실려 나가 대포로 주조됐고, 남은 점토 모형은 1499년 프랑스군 궁수들의 과녁이 되어 무너졌습니다. 1495년부터 3년을 들여 자기 손으로 끝낸 「최후의 만찬」마저, 프레스코를 거부하고 마른 벽에 올린 물감 때문에 1517년경부터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점, 주문한 사람에게 끝내 넘기지 않은 그림 한 장만은 죽는 날까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계약서와 물감과 대포. 그가 왜 끝내지 못했는지를 1452년 빈치 마을에서 1519년 앙부아즈의 무덤까지 64분 안에 추적합니다. ⏱️ 타임랩스 0:00 몰수 조항이 붙은 계약서 — 완성작 스무 점의 천재 0:56 1452년 빈치 마을 출생 — '다 빈치'는 성이 아니다 3:42 어머니 카테리나 — 2023년 노예 해방 문서 논쟁 5:10 베로키오 공방과 「그리스도의 세례」의 천사 11:09 「동방박사의 경배」 계약서 — 24개월 납기와 몰수 조항 15:41 첫 번째 질문 — 밑그림만 남기고 피렌체를 떠나다 18:25 세계 최초의 이력서 — 무기 아홉 가지, 그림은 열 번째 24:42 청동 기마상 그란 카발로 — 계획 높이 7.3m 26:33 1494년, 청동이 대포가 되다 30:57 1495년 「최후의 만찬」 — 수도원 식당의 벽 35:01 프레스코를 버린 선택 — 마르지 않는 물감의 대가 37:55 잘려 나간 예수의 발, 마구간, 폭격 — 21년 복원 40:46 1504년 베키오 궁전 — 미켈란젤로와 마주 본 두 벽 46:21 「앙기아리 전투」 — 흘러내린 물감과 숯불 화로 50:07 교황 레오 10세의 판결 —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생각하니" 51:45 모나리자 — 리자 델 조콘도와 넘기지 않은 그림 53:58 미소의 정체 — 중심와와 곁눈의 착시 55:28 알프스를 넘다 — "오른쪽이 마비되어" 59:56 1519년 앙부아즈 — "이 사람의 유해로 추정됨" 62:19 스무 점의 의미 — 납기입니까, 기준입니까 ━━━━━━━━━━━━━━━━━━━━━━━━━━━━━━━━━━━━ 📜 역사로그 — 역사 사건과 인물의 삶의 기록을 소개하는 채널 🔔 구독과 좋아요는 다음 영상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