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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앞에서 뺨 맞던 장군들이 결국 칼을 뽑았습니다

역사선생김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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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앞에서 뺨 맞던 장군들이 결국 칼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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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선생김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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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변, #정중부, #고려사, #의종, #한국사 1170년, 고려의 대장군 이소응이 왕 앞에서 뺨을 맞고 계단 아래로 떨어졌고, 왕과 신하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습니다. 그날 해 질 녘 보현원에서 무신정변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칼을 뽑자는 결정은 그 뺨보다 하루 먼저 내려져 있었습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원문으로, 무신정변 밑에 진짜로 쌓여 있던 것을 한 겹씩 벗겨 봅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1170년 음력 8월 30일, 오문 앞 오병수박희: 종5품 문신 한뢰가 종3품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친 날 흔히 듣는 이야기와 기록이 갈리는 지점: 이소응의 나이, "장난인데" 대사, 철퇴 처형은 기록에 없다 하루 전 흥왕사, "왕이 보현원으로 가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 뺨은 원인이 아니라 방아쇠였다 다섯 달 전 화평재, 굶주린 호위 무신들의 속삭임과 정중부의 한마디 "그렇다" — 그리고 6년 전 1164년에 이미 싹튼 딴마음 무관 벼슬의 사다리는 정3품 상장군에서 끝났다: 강감찬도 윤관도 과거 급제 문신이었다 스물다섯 해 안팎 전 섣달그믐 밤, 김돈중이 촛불로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 — 그때의 왕은 의종이 아니라 인종이었다 민가 쉰 채를 헌 정자,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 밥을 차려 온 일꾼의 아내, 비만 오면 무너지던 연복정 둑 해 질 녘 보현원의 학살과 개경 거리에 울린 "씨도 남기지 말라" 칼이 바뀐 뒤: 김보당의 복위 거병과 경주에서 맞은 의종의 최후, 망이·망소이, 그리고 1198년 만적이 부른 "경인년"